동료는 샘플3의 잘못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나에게 경솔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샘플3에게 경솔하다고 먼저 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만둔다고 통보한 것도 샘플3이었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더 위로 자리를 이동한다고 결정한 뒤 통보한 것도 샘플3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 자리에 가서 일을 하게 되려면 나의 동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양해는 구해야만 했었다. 늘 쉽게 마주쳐야 하는 위치였다.
대표는 그런 문제 제기에 샘플3이 그러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며 그가 앞에 멀쩡히 있음에도 그를 대변했다. 그러면서 나나 샘플3의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사안에 대한 깊이도 당사자만 알 것이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소리도 덧붙였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고심을 하지 않은 것은 누구며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하게 한 것은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를 두고 한 말인 것은 말 안 해도 티가 났다. 그러면서 어떤 방법으로든 화해를 하고 사죄하고 용서받고 털고 해결해야 하지 이런 식이라면 골치가 아프다며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을 이렇게 키운 것은 샘플3이지 내가 아니었다.
샘플3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나섰다.
"대표님, 그냥 말씀드릴게요. 화해하고 용서하고 하는 부분들에 대한 시도를 안 했던 게 아니구요. 공간 분리 요청을 드렸던 것 자체가 숙고의 과정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과 그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발생한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공론화가 아니라 공간 분리 요청을 한 거였어요. 공간 분리가 되었다면 여기서 계속 일할수 있는가 제 마음도 돌아보고, 돌보고 샘플3을 용서할 수 있을지 혹은 같이 다시 일할 수 있을지 하는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기회를 아예 주지 않으셨잖아요."
한 두 번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요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표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또다시 내 탓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고, 아예 소통의 기회를 주지 않은 건가..."
즉각 반응했다.
"제가 닫았나요?"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내 탓을 할 수가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서 대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어떻게 유추될 수 있을까? 내가 공간 분리 요청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그만둔다고 말한 샘플3이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반응에 대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자신의 말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은 누구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라며 변명했다.
샘플3이 그만둔다고 한 것은 나를 위한 배려라고 했다. 내가 불편하다고 하니까 샘플3이 떠나기로 결정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그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회피'임을 대표는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샘플3이 상위 조직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 일에 대해 샘플3에 대해 들었지만 다른 조직의 사람들이 이 일을 알고 있는 것은 본인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는 것이라며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 내가 말한 것이다. 대표는 나를 이해하는 척 답답해서 의논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 하면서 그런 말은 와전되고 꼬리를 물고 확산되면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배려심이 깊은 불쌍한 사람이고,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피해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어 있었다.
대표는 자신은 입 다물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입단속하고, 한 사람이라도 덜 알게 하자 그래서 쉬쉬하고 내부적으로 본인들이 갈등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는데, 애들도 아니고."
내가 샘플3과의 일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사회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의 직업이 공인이라고 봐야 하고 하기 싫다고 팽개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책임과 위치에 대한 자부심,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적인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면서 말이다.
대표가 말한 그런 것들이 가득했다. 그런 일이 있고도 그런 것에 의해서 버티고 버텼던 것이다. 그렇다면 샘플3은 그런 짓을 저지를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던 것일까? 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그건 그거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당한 일에 대해서 시간이 힘들었고, 인내했다고 하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작용해서 일을 못할 정도인지도 모르겠다며, 상담받고 공간 분리 권고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본인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상당히 안 좋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또 내 탓이었다. 내가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샘플3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문제라고 대체 몇 번이나 이야기해야만 하는 걸까?
성인이고,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인이라면 어떤 일에 대한 여파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신중.
웃음이 났다. 대체 얼마나 참아야 신중하지 않은 것이며, 대체 샘플3은 얼마나 신중해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지 가늠도 안 되었다. 남녀를 가르고 싶지 않은데,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동료는 자신도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참은 게 아니면 뭐냐고 물었다.
대표는 동료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내가 되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고, 어...? 생각한 게 있을 거 아녜요."
도돌이표였다. 조직에서 일어난 일을 조직은 해결할 생각이 없었고 그냥 쉬쉬하기 급급했으며 ,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해결을 강요했다.
"말씀드린 게 답니다.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희망이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더' 참지 않은 피해자 탓을 하고 있었다.
대표는 표면적으로 샘플3이 자리를 옮기면 조용할 텐데 나마저 그만둔다고 하면 조직은 어떻게 운영을 하냐고 했다. 그건 이제 그들이 결정할 일이었다. 내 손은 떠났다. 책임감 없이 그만둔다고 한 것은 샘플3이었으니 상위 조직으로 가지 않고 남던지, 일을 병행할지는 샘플3이 결정할 일이었다. 또다시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대표는 희대의 어록을 남겼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샘플3이 그런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자기가 물러가는 것에 대한 어떤 자책감 때문에 스스로 덩달아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세상에. 내가 가해자가 그만두는 것에 대한 자책감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뇌 구조를 한 번쯤은 열어보고 싶었다. 자책감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낸 것이 신기했다.
"저요? 저는 자책감 없습니다."
나의 단호함에 대표는 조직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내가 자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돌이표였다.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다던 대표는 계속해서 내 탓을 하고 있었고 이 얘기를 계속 듣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나와 동료가 같은 마음이었다.
대표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던 동료는 말을 끊고, 샘플3의 생각을 물었다. 이런 말들을 대표가 아니라 샘플3이 직접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샘플3은 말을 시작했다. 그건 답답함의 연장일 뿐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