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토로 Feb 04. 2024

갑작스러운 고정 취업

나는 사임당이다.


많은 이들이 뭔가를 구매하고 지불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한 곳에 붙박이로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복사되었고, 견본이라는 이름표를 단 후 본체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었지만 견본이 붙은 나는 작은 사장이라는 사람의 손에 들려 어느 한 곳에 고정취업이 되었다.


어느 읍소재지의 작은 서점 겸 카페였다.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받지 못한 채 취업했기에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조금은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대기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사수가 있었다. 그는 '조심'이었다. 두 조심 중 한 조심은 굉장히 만신창이었다. 살짝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딸랑' 문소리가 났다. 갈래갈래 쪼개져 있었지만 모양은 유지하고 있던 조심은 딸랑 소리와 함께 들어온 발짓으로 여기저기 흩어졌다. 조심... 그는 조심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과 가까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 사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나를 한 번 쓰윽 보고는 조각난 조심을 맞춰줬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나도 저런 꼴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이상한 곳에 취업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밀려왔다.


작은 사장은 테이프로 감싼 나를 조금 비뚤게 붙였다. 인간이 보았을 때 본체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여전히 나의 역할을 모르고 있었다. 작은 사장도 큰 사장도 내가 의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저기... 저에게 역할을 설명해 주실 분은 없으신 걸까요? 추슬러진 조심이 말했다.


"사장들이 의도한 것은 아닌데 입구에 턱이 있어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이 턱에 잘 걸리십니다. 제가 여기 초창기 멤버입니다. 매일매일 존재감을 내비치며 조심하라고 알렸지만 이렇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조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밟았어요. 그리고 찼죠. 그래서 이렇게 됐습니다. 하하하하하. 당신이 인간들의 이목을 끌어서 턱의 만행을 멈춰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다. 나의 역할은 인간들이 턱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 원래 나의 역할은 값을 지불하는 일이었기에 새로운 일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사수인 조심처럼 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 보아라, 인간들. 나의 위엄 있는 자태를!


하루의 근무가 끝났다. 아무도 턱에 걸리지 않았다. 조심은 거짓말쟁이였다. 라고 생각한 순간 사장들이 수군거렸다.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조심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단 하루 만에 해낸 것이다. 수많은 인간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던 것과 사장들이 묘하게 기뻐하고 있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나 사임당, 하루 만에 사수를 제치고 안전관리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몰랐다. 스스로도 몰랐던 매력으로 다른 역할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