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앞으로 어떤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조심님이 몸을 달싹 움직였다.
"무슨 일이세요?"
그 물음에 조심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차의 주인이 저를 처음 조각냈어요. 그때 정말 무섭고 아팠거든요. 오늘 오시는 건 아니겠죠? 혹시 그 인간이 오면 사임당님도 조심하세요"
차를 발견하고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기에 그 인간을 볼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안심도 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 무렵 늦은 저녁 딸랑하고 소리가 들렸다. 조심님이 심하게 움츠렸고, 또다시 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아아 불쌍한 조심님. 그리고 불쑥 얼굴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 오만 원이다. 내가 흘린 것 같은데?"
아, 이 인간이구나 했다. 조심님이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또 하나의 얼굴이 나에게 쓱 다가왔다.
"어? 오만 원이다."
그렇게 갑자기 얼굴을 쓱 밀면 아무리 강심장인 나도 깜짝 놀라고 만다. 아니, 그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그렇게 허리를 숙일 수 있다니 차의 주인과 그 친구는 정말 유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인간이 나를 봤다.
"어? 오만 원이다. 에이 진짜가 아니네 기분만 더럽게."
뭘 한 게 없는데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턱에 안 걸렸으니 내 역할은 다 한 것이다. 조심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나를 발견하고 나를 지칭하고 그렇게 카운터로 갔다. 그러고는 말했다. 일행 중 여자 인간은 자신은 배가 부르다며 안 마시겠다고 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 배가 불러서."
주인들은 익숙한 듯 세 잔으로 나눠드릴까 물었다. 여기저기 떠돌 때 1인 1메뉴에 대한 일들이 전국에 이슈라고 들었다. 여기 주인들은 그건 잘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닌가? 뭔가 통달한 얼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커피 향이 퍼지고 양이 조금씩 담기긴 했지만 세 잔의 커피가 나왔다. 양이 적은 것은 당연했다. 두 잔을 세 잔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런데 키가 큰 인간이 양이 적다며 투덜거렸다. 내가 가짜라며 기분이 더럽다고 한 인간이었다.
조심님에게 살짝 들으니 사장들이 음료를 나눠주는 이유는 서로 나눠먹다가 바닥과 테이블에 흘려서 그걸 치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들의 얼굴이 통달한 얼굴인 것이 맞았단 것이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잠시, 여자 인간이 말했다.
"여기에 뜨거운 물 좀 더 부어줘."
배가 불러서 안 먹겠다던 인간이었다. 사장들은 그것 조차도 익숙한지 뜨거운 물을 더 담아줬다. 아뿔싸! 여자 인간이 투덜이 인간에게 덜어준답시고 넘기다가 다 흘리고 말았다. 큰 사장이 행주를 가져다가 닦으면서 그래서 덜어주는 것이라고 말하자 투덜이 인간이 욕을 내뱉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겠지.
그래도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큰 사장도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인지 디저트를 만들 밤을 집중해서 손질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제 돌아가려는 몸짓을 했다. 그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하더니 커피가 남았으니 환불해 주냐고 물었다. 말이라고 하는 걸까 싶은 순간 컵을 가지고 왔다. 먹히지 않는 것 같으니 포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뜨거운 물을 더 부어준 그 커피였다. 사장이 얕은 한숨을 쉬고 포장을 하고 있는 또 그 찰나! 여자 인간이 다듬고 있던 밤에 손을 대려고 했다. 세 번을 끓이고 정성을 다해 다듬은 그 밤이었다. 고난과 역경의 그 밤이었다.
"만지시면 안 돼요!"
분명 사장들의 제재가 더 빨랐다. 그럼에도 여자 인간은 그 말은 손으로 집어 들었다. 두 사장의 탄식이 입구까지 들렸다.
"아이고, 만지면 안 되나? 그럼 만졌으니까 내가 가지고 가야겠네."
"아뇨, 내려놓으세요."
단호한 사장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졌고, 그런데 그걸 만졌으니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물건인 나는 그 알 수 없었다. 여자 인간이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인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투덜이 인간이 소리를 질렀다.
"나와! 왜 거기서 쿠사리를 먹고 있어!"
그러며 나를 심하게 째려보고 갔다. 네네! 가짜라서 미안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그 인간들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조심님 말로는 전에도 비슷한 일로 안 온 적이 있었는고 그 뒤로 처음 온 것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와서 또 사고라니 어찌 보면 대단한 인간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차 인간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내가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인간은 경계 대상이다. 아마 주인들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