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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Dec 20. 2020

영랑호에는 바다물고기도 민물고기도 산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


* 이 리뷰는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의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을 보지는 않았는데 전 세계 18개 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고 하니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프랑스 버전으로는 <위험한 만찬>으로 제공되고 있다.


<완벽한 타인>은 저녁을 먹는 동안 핸드폰의 모든 전화와 문자를 공개하는 게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모여있는 사람들의 묘한 감정싸움과 드러나는 갈등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외국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라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서진 배우님의 살짝 어색한 연기 빼고는 다 괜찮았다.


주인공들의 고향은 강원도 속초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관계성과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네 명의 친구는 석호인 '영랑호'에 모여서 월식을 기다리며 투닥거린다. 싸우는 이유는 영랑호가 바다인지 아닌지이다. 바다물고기가 살고 있기 때문에 바다라고 하는 친구와 민물고기가 살고 있기 때문에 민물 호수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얘들아, 너희 둘 다 맞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두 친구의 이야기가 둘 다 맞은 이유는 석호의 특징 때문이다. 석호는 중·고등학교 과학 수업이나 지리 수업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이다. 원래 바다였다가 모래 퇴적층인 사주가 물길을 막아서 호수가 된 형태를 말한다. 바다와의 길이 완전히 단절되는 곳도 있고, 바다와 호수가 연결된 곳도 있다. 처음에는 원래 바다였던 곳이라서 염분이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민물인 하천의 물이 유입되면서 점점 옅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바다와의 격리가 모래로 된 것뿐이라서 지하를 통해 해수가 섞여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에 흔히 이야기하는 담수 호수에 비해서는 염분이 높다. 


영랑호는 바다와 호수가 연결된 케이스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호수를 기수호라고 한다. 이런 기수호는 담수호에 비해서 플랑크톤이 풍부한 편이다. 민물고기와 바다물고기가 모두 사는 것도 당연하고 다양한 생물이 살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가치가 아주 높은 곳이기도 하다.

석호는 오랜 시간을 걸쳐서 형성되는 곳이기 때문에 영랑호의 나이는 많을 수밖에 없다. 8,000년 전에 생성되었고, 이름은 신라의 화랑이었던 영랑이 발견하면서 붙여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속초에는 대표적으로 청초호와 영랑호 두 곳의 석호가 있는데 청초호는 항구개발과 매립으로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영랑호는 호수 원형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100년 전에 비해 호수 면적이 조금 줄고 주변 습지와 연못이 모두 사라지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주변에 유원지가 개발되고 양어장, 낚시터, 주거지, 리조트의 오·폐수가 영랑호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악화되기도 했다. 수질이 악화되니 악취도 심해지고 벌레도 많아지게 되었다. 결국 1996년 깔따구 퇴치작업도 진행이 되었다. 2010년을 전후해서는 물고기의 떼죽음과 녹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있다 보니 영랑호에는 1993년부터 2015년까지 준설, 호안정비, 오·폐수 차집관로 매설 등의 사업에 총 4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를 들였다. 지금 영랑호의 수질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미진하다고 판단되고 있고, 수질보호를 위해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영랑호에는 원앙, 수리부엉이, 수달, 가시고기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생물을 비롯한 다양한 종의 어류와 조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다양한 먹이가 있으니 다양한 동물들도 찾아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와서 탐조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곳이고, 2013년 1월에는 국내 미기록종이 발견되기도 했다.

과거에 주변지와 내수면개발을 진행하면서 수질이 악화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가 개발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카누 선착장을 만들었고, 호수 안에 모터보트를 허가해줘서 운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가 좋은 곳이다 보니 영랑호와 그 주변은 끊임없이 관광개발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영랑호 생태탐방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갈등이 있다. 이번 사업은 호수 안쪽의 수면과 물가에 인공구조물을 대규모로 설치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부교다. 수많은 사업이 있었지만 이런 사업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호수의 수면을 개발하게 되면 석호의 자연생태계에 큰 피해가 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부교는 물에 띄워놓는 형식의 다리라서 수질악화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동안 인간의 간섭이 없었던 지역까지 간섭이 들어가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동·식물들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영랑호가 수면을 개발하게 되면 다른 문제도 생긴다. 인근 지역의 다른 석호들도 개발을 하려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성의 송지호와 화친포 등이 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신청이 가능해지자 전국의 40여 곳이 넘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신청한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랑호는 과잉개발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많은 구조물(데크 등)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서 도보로 인한 보행과 자전거 이용한 산책이 가능하다. 이미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고, 약 1시간 20분 정도면 영랑호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이 사업의 진행이 경제적인 효과를 담보하고 있지는 않다. 속초시가 현재(뒤늦게) '관광수요 추정'에 대한 용역을 발주했지만 이미 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중에 맡긴 것이니 신뢰하기는 어렵고, 심지어 이 사업의 예산을 코로를 핑계로 집행했다는 것에도 신뢰가 무너졌다.  속초시에서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은 관광객들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인공구조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러 오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속초는 1년 방문객이 2천만 명 정도로 오버투어리즘의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관광객의 수를 늘리려는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관광산업에 대한 왜곡까지 불러올 수 있다. 특히 머무르지 않는 관광, 쉽고 빠른 둘러보기가 가능한 관광으로 획일화되면 오히려 고유의 생태적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속초시가 시민들이 반대하면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고선 사람들이 모이자 시민들의 모임을 환경단체라고 명명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이 모임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고, 심지어 학생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1인 시위도 하고 있고, 몸자보를 하고 걷기도 하고 있고, 반대 서명도 받는다. 속초시 인구의 3% 이상의 서명을 받았지만 역시 묵살되고 있다. 속초시에 우호적인 단체들에게 부탁해서 찬성하는 현수막을 대대적으로 걸었다는 의심도 받았다. 불법 현수막에 대해 신고해도 걷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랑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일 뿐인데 쉽지 않다.


영랑호에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바다물고기와 민물고기들은 서로에 대해 다 알지 못해도 어울려서 살고 있다. 그 안에도 갈등은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석호를, 기수호를 이런 식으로 잃는다면 어른들은 영랑호가 바다인지 민물 호수인지 다투는 아이들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참 많은 것들을 빼앗으며 살아왔는데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마저 빼앗을 수는 없지 않을까?


감독님이 이런 영랑호의 모습을 영화의 전반적인 모습으로 담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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