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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Dec 23. 2020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잔인하게도 닮아 있다

[드라마] 시티홀(2009)


* 이 리뷰는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시티홀>은 내 인생드라마다. 대학 다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찮게 보게 되었고,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보다 보니 내 멀티플레이어 기질을 높여준 그런 드라마이기도 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 드라마는 10급 공무원인 '신미래'가 밴댕이아가씨 대회에 나가 우승했으나 상금도 못 받고 시청에서도 쫓겨나고, 시장이 되고, 지역 국회의원인 '조국'이랑 연애하는 정치멜로 드라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의 필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로맨스와 그 오글거림과 빠른 전개들이 재미있어서 좋아했는데 다시 보고 또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드라마에서 환경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영화학 수업도 들었었고, '환경운동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환경운동 판에 발을 들여놓으니 보이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특히 춘천에서 일을 하면서 보았을 때는 '아, 환경을 다루는구나'했던 것이 원주에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되니 '아, 정말 지극히 현실 반영이구나', '작가의 사전 조사와 사건을 읽어내는 방식은 존경할 만 하구나'하고 느끼게 되었다.


드라마 후반부의 븐 스토리 중 하나인 '어떤 공장'을 다루는 방식에서 환경을 읽어볼 수 있다. 이 어떤 공장의 내용이 원주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SRF발전소 혹은 산업폐기물 소각장의 내용과 유사하고, 벌어지는 일들이나 일련의 사건들이 현실과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이 현실의 사건들은 드라마다 나오고 난 뒤 벌어졌다는 것이다. 혹시 작가님은 예언가?


대기업이 유해물질을 처리하기 위한 시설을 지자체에 두고 싶어 하고, 관련 내용을 시장과 타협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내거는 것이 시장이 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던 시립병원. 대기업이 말은 모두 사탕을 발라놓은 것처럼 달콤하다. 공장이 들어오면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지역 경제 활성화도 되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주변 상권도 살아나고, 기업이 세금도 많이 내게 되니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공장을 지어서 좋고 말이다. 

힘도 없고 편(정당)도 없는 무소속 여자 시장으로서는 정말 혹할 말이다. 저런 악조건이 아니더라도 지자체에서는 혹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판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해야 하고 그 책임까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역시 지자체장의 역할이다.


이 사업체의 이름은 '휴먼 앤 코리아'다. 어디에는 진짜 있을 것 같은 이름이고, 하려는 사업은 '재활용 에너지 발전소'다. SRF발전소와 유사하다고 말했지만 내용을 놓고 보면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같은 내용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국내 폐자원의 50%만 에너지화해도 1,000억 원의 경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은 SRF연료를 친환경 연료, 신재생에너지로 구분했을 때와 같은 논리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수입 쓰레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쓰레기를 들여오고 있는 것 역시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물론 기업이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시설이라면서 무시하고 우기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당 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법적으로 정해진 환경기준은 건강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으로 한계선을 정한 것은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용이하게 한 것이지 노출되더라도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사람마다 기저질환이 다르고,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건강기준으로 삼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또한 발전소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주가 되는 사업의 경우 순간 발생량이 법적 기준이 된다. 초당, 분당으로 하면 그 용량이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를 시간당, 월당, 연당으로 따진다면 그 용량은 어마어마하다. 원주의 어느 발전소가 미세먼지 발생량이 영화관의 농도보다 낮다고 한 적이 있으나 실제로 연간 발생량으로 계산하면 1톤이 훌쩍 넘어간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미세먼지들은 시민들의 기관지에, 주변 식물들에, 주변 토양에 축적된다. 환경의 변화는 일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염 물질의 축적이 환경이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국 나타나 봐야 아는 것이지만 그 나타남이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환경전문가를 다루는 방식도 재미있다. 단체 이름이 '푸른 자연 맑은 환경'인데 현판이 나무로 되어 있다. 환경단체 활동가를 다루는 방식이나 사무실을 그려놓은 방식도 흥미롭다. 사무실에는 파일에 끼워져 있는 서류가 한 벽 가득이고, 안에는 식물들이 있고, 활동가는 조끼를 입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환경단체의 모습의 집약체 같은 느낌이다. 특히 조끼의 색깔이 카키색과 회색을 섞어 놓은 것 같고,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것이 아, 저 사람은 영락없는 환경단체 활동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에 그런 복장들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거나 할 때 거론한 류의 조끼를 애용해 입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완전히 다른 거라면 지자체장이 환경단체에 직접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SRF와 관련된 부분은 환경단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SRF발전소는 대부분 소각(과 열병합)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용융 방식'을 택하지도 않는다는 것 정도?


그리고 거물 정당인이 쪼무래기 국회의원에게 '환경법'을 손보라고 하는 장면도 있다. 기업들의 숨통을 쥐고 있다는 표현, 국민들이 배가 불러야 산도 강도 푸르게 보인다는 표현 역시 현장에서는 많이 듣는 말이다. 먹고살기 힘든데 환경을 뭐하러 지켜야 하느냐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드라마에서도 언급되지만 우리나라 환경법은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풀어져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기업들은 규제가 심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나라만큼 풀어져있는 곳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그런 상황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동안 경제활성화를 핑계로 풀어준 규제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환경과 관련된 법은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역시 현실 반영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고, 2009년 당시 '녹색성장 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환경을 경제적 '도구'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이 녹색성장 기본법의 일부라고 봐도 무관하다. 그리고 2020년 지금은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결국은 시장 신미래의 남자 국회의원 조국이 수출을 하기로 한 외국 기업들에게 문의를 해서 유해물질이 국내에 반입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영어를 잘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해당 리스트를 받아내는 것 역시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반 단체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기업 기밀'이라는 이름이나 최근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 버리면 확인할 수 있는 길이 꽉 막혀있다. 정보공개청구에도 한계가 있고, 해당 서류를 지자체에 제출하지 않으면 정보공개청구는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런 법의 허점과 맹점들을 이용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긴 문제가 없으면 감출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이 드라마의 디테일의 끝은 주민설명회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과 땅만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갈등과 그 대상들이 얻은 정보(부동산 등)의 차이도 잘 그리고 있지만 기업이 들어와서 땅값이 오르는 것이 중요하지 유해 물질이 들어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그린 것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땅이 싸니까 안 좋은 시설이 들어오는 거고, 이 참에 땅 값을 올리고 조합을 만들어서 담합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민의 말은 소름 돋을 정도였다. 작가님이 혹시 어느 주민설명회에 다녀오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유해 물질을 섞어서 들여오는 것,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 기업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것 역시 현실과 닮아 있다. 10년이 지난 드라마인데 아직도 같은 상황이다. 전체를 확인할 수 없어 업체가 제출한 샘플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승인을 해 주는 방식이다 보니 샘플만 잘 만들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심지어 불법 사항이 걸려도 벌금만 내면 되니 그것 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벌금보다는 공무원 로비가 더 싸기 때문에 관련 행위들이 만연하게 발생한다는 이러한 대사가 드라마에 대놓고 나온다. 김은숙 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드라마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현실과 아주 다른 점은 대기업이 노선을 변경해서 시립병원도 지어주고, 좋은 공장을 짓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놓고 유해물질이 아니더라도 건강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설은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드라마는 해피엔딩이다.


환경운동을 하다 보면 결국은 정치와 행정과 마주한다. 드라마에서 신미래가 정치를 정의하는 대사가 있다.

"정당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 떨리는 것, 정기적으로 치사한 짓 하는 것, 정상인은 없고 치기만 가득한 것, 정 줄만하면 뒤통수치는 것, 정정당당은 치외법권 취급하는 것, 정리하면 정마담 치마폭보다 구린 것, 근데 내가 바라는 정치는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 그거예요."

정치와 정당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는 터라 더욱 동의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국내의 모든 드라마를 본 것은 아니지만 로맨스드라마 중에 환경과 관련된 사건과 현실을 이렇게 잘 녹여낸 드라마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드라마는,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창작물을 창작물로서만 바라보기 어려운 것에 그러한 이유들이 담겨있다. 창작물의 이러한 현실 반영을 '명예훼손' 같은 쪼잔한 것으로 고소하거나 그러는 일은 없길 바라며 비슷한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추신. 환경단체 활동가들 세련되게 그려줘도 괜찮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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