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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Dec 11. 2020

이젠 나도 날 잘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사실 본연의 나는 누군가에게 피곤할 수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사람에게 소유욕도 많고, 집착도 있고, 때로는 투정 부리고 싶고, 짜증도 내고 싶어. 이 성격대로 그나마 굴 수 있었던 나이는 22살. 그때까지만 해도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표현을 하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냈어. 그리고 상대의 행동에 이해가 가질 않으면 말을 했지. 그러나 22살을 기점으로 내 성격은 확 바뀌기 시작했어. 모르겠어. 그때 만났던 남자 친구와 지긋지긋할 만큼 싸워대서 그런가, 결국 타인과 나의 성격을 조율하는 건 허상에 불과하다고 느낀 것 같아. 그렇게 나는 나의 성격을 걸어 잠갔고, 그 뒤로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채로 만나왔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하기 까다롭지 않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갔어. 이런 식으로 나는 10년간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았던 것 같아.


10년 동안 모든 이들에게 지나치게 깍듯했어. 그리고 이 깍듯함에 점점 집착하게 되었고. 사실 나도 인간인데, 화가 나고 투정을 부리고 싶은 순간이 있잖아. 근데 그냥 안 했어.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상대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까 봐 못했던 것 같아. 그리고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속으로 내 감정을 삭히게 됐지. 이게 습관이 되어버렸어. 나를 숨기는 게. 이게 점점 심해져서 나는 가족들에게조차 나를 표현하지 않게 되었어.


"예전의 너는 갈등 앞에서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갈등 앞에서 회피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족들과의 갈등을 겪던 중,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리고 이게 남자 친구들에게도 심해졌던 것 같아. 언젠가, 꽤 오래 만났던 전 남자 친구가 내 앞에서 울면서 화를 냈어.


"너는 왜 네가 힘든걸 나에게 공유하지 않아? 가끔 난 네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널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 말을 들은 게 그 사람과 2년 정도 만났을 때쯤이었을 거야. 그때 만났던 남자 친구는 나에게 소유욕을 드러내 줘, 집착해줘, 화를 내도 돼,라고 말을 했고 때로는 요구도 했지만 나는 전혀 하질 못했어. 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지. 입에 자물쇠가 걸린 사람처럼. 그리고 그 뒤로 만난 사람들에게도 비슷했던 것 같아.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연애. 사실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습관이 뭔지 도저히 온전한 나를 공유할 수가 없겠더라고. 나의 어둠, 나의 불안, 나의 분노,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아픔, 나의 미련, 나의 집착, 나의 소유욕. 이런 것들 말이야. 반면 나는 웃으면서 이런 것들만 드러냈어. 나의 행복, 나의 긍정, 나의 기쁨, 나의 삶의 의미와 같은 긍정적인 것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최고의 연기자가 되었고, 거대한 역할극 속에서 '좋은 사람'을 부지런히 연기하는 중이지.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 보니 내가 좀 지쳐버린 거야. 매번 힘줘서 사람을 대하는 게. 이러다 보니 언제까지 내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 성격을 인정하기로 했어. 그래서 본연의 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거야. 그냥 하면 된다고, 왜 미리 타인들에게 '나'를 거부당할 거라고 생각하냐고 생각하냐는데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어. 타인에게 버려지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 아니면 나는 늘 너에게 좋은 사람 었고 혹시나 우리의 관계가 끝이 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닌 네 잘못이야, 라는 명분을 갖고 싶은 건지.


10년이라는 시간은 꽤 길었나 봐.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린 걸 보면 말이야.

22살의 나는 32살이 되면 모든 걸 잘 아는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날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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