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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Dec 03. 2020

어느 한 남자의 고백

6년 전 썼던 단편 소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이전에 제가 하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나열할 이야기는, 그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밑바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따분한 사랑타령일지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관찰하는 기록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늘에게도 이 사실은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필연인 듯 사랑했다는 것을요.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제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처음 본 건 20살, 제가 대학문이라는 것을 밟았을 때였습니다. 학창 시절 성적이 좋았던 전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의대를 갔고, 저도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질 않아 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대학에 진학했었지요. 그래서인지 저는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의예과에 다닌다는 사실보다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간섭이 없다는 것에 들떠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절망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고요. 잘할 수 있어! 하는 기대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을 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야릇한 감정과는 달리 대학 캠퍼스는 순수한 낭만으로 가득 차있더군요. 신입생들의 씩씩한 웃음소리도 여기저기 울려 퍼졌었습니다. 초봄 이어서 느껴지는 특유의 알싸한 공기도 참 맛있었고요. 저도 모든 것을 다 처음 접하는 갓난아이가 된 것 마냥, 처음으로 느껴지는 대학 특유의 청년 에너지에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캠퍼스를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그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의 첫사랑이 다 비슷하다고 하던가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흰 피부.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흐트러진 머리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칼을 정리하는 가지런한 손가락까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저는 그렇게 서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렇게 눈을 마주쳤습니다.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마주하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빠르게 뛰던지. 지금이야 그것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는 저도 그런 감정이 처음인지라 시선을 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저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빙그레 웃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저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습니다. 저의 미소를 받은 그녀는 이내 곧 몸을 틀어 어디론가 가더군요. 저는 바보처럼 씩씩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쫓아가서 전공이 뭔지 이름은 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처럼.

한참을 서 있다 얼이 빠진 채로 하숙집으로 향해 걸었습니다. 이것이 그녀를 처음 본 기억입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녀를 처음 본 그 자리를 오가며, 그때 그 순간, 그녀의 미소를 다시 훔쳐봤습니다.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진 그녀와, 그녀의 미소를 보며 한없이 황홀했습니다.


한참 동안은 제 상상 속에서 그랬노라 말한다면 순진하다 웃으실 건가요. 그때 당시엔, 정말로 그랬습니다.

수업을 가기 위해 캠퍼스를 왔다 갔다 거리면서 그녀를 만났던 그 자리에서, 한참을.


이렇게 열병 어린 사랑을 할 수 있었던 20살, 어찌 보면 불행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저는 상상 속에서나 어루만지던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말고사 막바지 준비를 하느라 밤을 무수히 새우던 날, 캔 커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그녀를 마주쳤습니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묶고, 물감이 마구잡이로 묻어져 있는 앞치마를  입은 채 그녀 또한 캔 커피를 사고 있더군요. 조금은 수척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그녀를 만났다는 감동으로 저와 같은 캔 커피를 계산하던 그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몇 번이고 쓰다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렇게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저는 학기 초에 봤던 그녀를 신기루로 치부해버렸을지도 몰랐을 일이지요.

저는 편의점 밖에서 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후 그녀가 편의점에서 나와 학교로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따라갔습니다. 그녀의 발자국을 쫓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가득 차서 웃음이 났었습니다.


“저기요.”


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쫓아갔었나 봅니다. 그녀가 그 시점에서 말을 건 것을 보면 말이지요. 저는 그녀가 저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당황해서 멈추어서 버렸고, 그녀는 저의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그녀와 저를 둘러싼 공기가 날카로운 선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저도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까부터 저 쫓아오셨죠? 편의점 앞에 계시던 분 같아서요.”


제가 그녀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낸 만큼 그녀가 저에 대한 것을 눈치챘을 것이라고 생각해 었어야 했는데, 저는 제가 나름대로 시선 처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녀가 저의 행동을 파악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낭패라고 생각하며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는지 고민했었으니까요.


“네.”


그리고 바보처럼 저는 그녀에게 네, 네.라는 대답밖에 하질 못했었습니다.

뒷모습을 보여준 채로 서 있었던 그녀는 몸을 틀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심연과 같은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상대를 향한 곧은 시선.

저의 상상 속에서 수도 없이 그려졌던 그녀는, 한 학기가 지 나가는 시간 동안 저의 상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져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이런 감정을 느낄 때 사용하는 것이었던가요.

그녀의 계속되는 질문에 할 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려고 할 때쯤, 그녀는 픽 웃으며 또 다른 질문을 해왔습니다.


“설마 귀신은 아니죠? 전에도 학교 안에서 신기루처럼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요.”


예상과는 달리 엉뚱한 질문에, 그리고 그녀 또한 나를 어렴풋이 기억했었구나, 라는 생각에 저는 저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해버렸습니다. 아니, 왠지 웃고 싶어 졌습니다. 제 스스로가 생각해도 저는 지금 너무나도 이상한 상태였거든요. 저의 웃음에 그녀는 미묘하게 입술을 움찔거리다 이내 그녀도 저를 따라 웃었습니다.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여름밤이었습니다.

공기가 차갑지도 덥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였고 이런 날 하늘에는 별이 빛날 법도 한데, 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달빛 이 저희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도 괜찮다고, 그녀에게 너의 진심을 전해도 괜찮다고.


“그쪽이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이번에는 그녀가 파안대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웃기 시작하면서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결모양을 만들어냈습니다. 코를 찡그리며 웃는 버릇이 있더군요. 심연 같다고 생각했던 눈은 활처럼 휘어졌고요. 저는 그녀가 웃음을 멈춰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 심하게 웃어, 그녀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던 제 혀를 씹어버리고 싶을 만큼 민망하더군요.

이럴 때의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가고 모든 감각기관이 다 느껴지더군요. 1초가 10분처럼 느껴지고, 이마 옆에 맺힌 자그마한 땀방울이 중력을 버티지 못해 또르르 흘러가는 것이 느껴지고, 그녀의 시선이 저의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타고 흘러가는 것이 전부 다 느껴지더군요. 한참을 웃던 그녀가 웃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저에게 다가와 저의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걷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녀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그녀가 던지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대답했습니다. 또, 그녀는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서 소개하더군요. 전공이 무엇인지, 몇 학년인지, 본인이 왜 본인의 전공을 하게 되었는지. 가족, 친구 이야기.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본인의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더군요. 하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 물었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이름은 비밀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화사하게 웃던 그녀의 이름은 어떤 이름인지 궁금했지만 그녀가 툭툭 던지는 그녀와 관련된 정보가 너무나도 소중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곱씹느라 어느 순간부터는 궁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양화, 4학년, 마크 로스코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서 서양화로 왔고, 부모님 두 분 다 살아계시지만 현재 함께 살고 있지는 않으며, 소중한 친구가 몇 되지만 대학 때문에 떨어져 있다.


저의 상상 속에서 유영하던 그녀는 그 여름밤을 기준으로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한 여대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저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었죠.


저는 그때 얼른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투명해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고,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여자도 아니지만 현실 속에서도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하여 현실에 내려앉아서 살기보단 환상 속에서 꿈꾸듯 그렇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랬으면 지금, 덜 아팠을까요. 아니요,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할지라도 필연인 듯 저는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고 아파했을 것이며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 여름밤, 그녀는 작업실로 저는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 시시껄렁한 신변잡기적인 대화뿐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조차 행복했으니까요.

그녀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무렵, 그녀는 손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귀에 가져다 대더군요. ‘연락’ 하라는 사인. 그녀의 적극성에 너무나도 기뻐 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습니다. 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피식 웃으며 작업실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도서관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전공 서적 위로 그려진 그녀의 얼굴에 괜히 얼굴이 벌게지기도 했다가 괜히 웃기도 했다가 괜히 멋쩍어하기도 했던 것만 기억이 나네요.


그 여름밤을 기준으로 우리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이름은 모른 채였지만, 그런 것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 그녀는 제 전화와 문자에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는 것. 만나자는 말에 흔쾌히 호응해주었던 것. 아주 가끔, 작업을 하면서 마신 와인에 취한 그녀가 연락을 해왔고, 그런 그녀를 보기 위해 하숙집에서 미대 건물까지 부리나케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도 없는 미대 건물 안에서 그림 그리는 그녀를 구경하며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안주로는 과자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조금은 싸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건물 안을 그녀가 틀어놓은 음악이 곳곳을 장식해주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즐기는 와인과 공중에 떠다니 던 축축했던 분위기.

늘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 가르침을 받았던 제가 일탈하는 것 같아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하던 제게 이런 일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냐고 무슨 재미로 이때까지 삶을 살았냐고 물어왔던 그녀의 와인에 취한 목소리도 떠오르네요. 정말이지, 지금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녀를 따라 해 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따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생생한 기억들입니다.


그렇게 1달을 가깝게 지냈고 저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으며 그녀는 받아주었습니다.

그녀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제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저와 그녀의 삶을 살아가는 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20살, 너무 어렸던 저는 그녀가 저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나이에 비해 정신이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이 이야기의 결과가 달랐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제가 아는 그녀라면 그녀의 미래에 마침표를 찍은 상태이더라도 저를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녀와 데이트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비록, 그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벌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해야만 했지만, 과외하는 그 순간도 그녀를 생각하면 힘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녀는 제가 과외하는 학생의 집 근처 카페에서 저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작업 구상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니, 힘이 날 밖에요. 과외가 끝나자마자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밤길을 걷고 걸으며 비밀스러운 언어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에서야 그녀의 말들이 이해가 가지만, 그때 당시엔 그녀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암호 같던지.

그녀의 손의 온기,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발걸음.

온통 그녀를 느끼며 그 암호 같던 말들을 하나하나 해독하곤 했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너는 나를 잊지 말아 줘. 나를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상관없어. 그냥 내가 사라진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는 온몸이 부서져라 울어준다면 좋을 것 같아. 나를 그리워하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졌으면 좋겠어.」


‘나를 잊지 마.’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던 암호 같던 말들.

이제, 두 번 다시 들을 수도 없는 그 말들은 저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제 과외비를 모으고 모아 큰 맘먹고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선물한 적도 있었지요. 당시 저는 면허가 없었고 그녀는 면허가 있지만 운전 경력이 미비해 차를 빌리면 안 됐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저는 그녀의 운전면허를 믿고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 당시 유행이었던 BMW 미니 쿠퍼를 빌려놓았었지요.

공항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차 키를 누를 때 나는 뽁뽁 소리를 따라 차를 찾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란.

기쁘지만 이를 어쩐다 는 표정으로, ‘나 장롱면허인데.’라고 했었지요. 둘이서 한참을 고민 끝에 그래도 돈 주고 빌렸으니까, 라며 그녀가 운전을 했는데, 저는 옆자리에 앉아 손잡이를 꽉 잡으며 신께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던 게 생각나네요. 다행히 그녀는 운전에 소질이 있었던지 2박 3일 동안 무사고로 운전했고, 둘이서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신나게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주도의 주민들이 우리 둘을 보며 신혼부부냐고 물어봤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신혼부부인 척 여보야, 자기야, 서로를 불렀고 시간이 흐르며 저 질문엔, “네! 신혼여행 왔습니다!”라고 능글맞게 대답할 수 있게 되더군요.


정작,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 관계였지만.


싱싱한 해산물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고, 해안선과 하늘의 경계선도 때로는 구분이 불가능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며 걷고, 차의 뚜껑을 열고 씽씽 달리며 엉망이 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


평범하지만 특별했고, 독특하지만 사소했던 순간들이 가득 찼던 그녀와의 시간들. 그런 시간들로 채워져 정신없이 여름방학이 끝났고, 이윽고 그 문제의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졸업 작품전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 작업실로, 저는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돌아왔었지요. 사실 저는 그녀와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 지 2달이 됐을 무렵부터, 그녀와의 미래를 상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저의 곁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행복함에 터지는 웃음, 꿈만 같아 터지던 울음.

누군가가 그런 저를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학기가 시작하고 난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관계는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방학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했었고 그녀는 저에게 보고 싶다고, 자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밤새도록 설명하기도 했었고 그 말에 안심하는 제가 있었는데, 2학기 때는 연락도 자주 되지 않았고 전화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부쩍 줄어들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사막처럼 서걱거리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그녀의 변화를 단순히 졸업 작품 준비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았고, 그녀에게서 ‘헤어지자.’라는 말이 나오면 어쩌나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숨을 죽이고 핸드폰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문자 말투로부터, 그녀가 기분 좋아 보이는 날들만 공략해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조심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졸업 전시회, 아무리 바빠도 꼭 보러 와. 너를 위해 준비한 작업이니까.」


그녀의 눈치를 보며 그녀가 가장 힘들 졸업 학기가 지나가기를 빌고 빌었을 무렵,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그녀의 문자 한 통입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이 문자를 보았고, 나를 위해 준비한 작업이라는 사실 하나로 기쁨에 도취되어 그 길로 학교 도서관에서 달려 나와 그녀의 졸업 전시회를 보러 갔었습니다. 참, 하숙집에서 성숙해 보일 수 있는 옷을 골라 입고, 졸업 작품을 하느라 고생했고 당신만큼 천재적인 그림을 그릴 사람은 없을 거야, 등등의 마음을 담은 편지도 5통이나 썼으며 그녀를 기쁘게 할 생각에 꽃집에서 플로리스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케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주문하고, 그 부케도 들고 갔었습니다. 인사동에 있는 그녀의 졸업전시회까지 가는데, 얼마나 설레던지요.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 했어 서 참으로 그리웠거든요.


“왔어?”


그녀가 건넨 인사는 굉장히 담백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저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라 그리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싱거운 재회여서 저는 조금 퉁명스러워졌습니다.


“응.”


쀼루퉁하게 대답하던 저에게,


“이리 와.”


라며 그녀는 저의 팔을 잡아끌더니 그녀의 그림이 걸린 장소로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졸업 작품은 저의 얼굴을 유화로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고, 제목은 ‘이 세상에 놔두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극사실주의라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야. 극사실주의는 대상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리는 기법이고. 어때, 너와 완전히 똑같지?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2학기 초반에 결정을 내렸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저는 그녀가 그린 그림 앞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에 그녀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2학기 내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조바심 또한 그 그림과 함께 사라졌었지요. 오랜만에 나눈 인사가 담백해서 느꼈던 섭섭함도 사라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품에서 조그맣게 웃는 듯 우는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습니다.


행복에 들뜨면 불행이 오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하던가요. 저는, 그때 그림의 제목에 주목했었어야 했습니다. 왜 이 세상에 나를 놔두고 가는 거냐며 제목의 의미는 뭐냐고 묻고 따졌어야 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저에겐 너무나도 아프고 서러웠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졸업전시회를 기점으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알고 있던 번호로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이미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흘러나왔고, 학교에 찾아가도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 걔 안 나와, 졸업할 생각이 없나 봐."


제가 알 수 있는 그녀의 소식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청춘이라는 이름 안에서 자꾸만 삶의 길을 잃고 만다고 하던가요.

한참을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녀를 찾아다니다 저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죽음이 믿기지가 않아 찾아갔던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자살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하게 앉아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슬퍼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 또한 말이지요.


“이러한 마지막이 어디 있어.”


너무나도 황당한, 혹은 가장 잔인한 이별 앞에서 저는 저도 모르게 화사하게 웃고 있던 영정 사진에게 말을 걸어버렸습니다.


옆에 적힌 그녀의 이름 ‘유미라.’


약 일 년 동안 가장 가까운 사이로 지냈지만,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이름.

그녀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녀를 향한 그리움, 원망, 미움이 뒤섞인 감정 때문에 눈에 눈물이 차올랐을 무렵, 그녀의 가족 중 한 명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혹시, 자네가 이 서준 군인가?”


가족들의 질문에 예의를 지키기 위해 슬픔을 삼키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고, 저에게 말을 건 가족은 저에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이 편지는, 유일하게 그녀가 남긴 유서로 저에게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그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 식당으로 어렵게 발걸음을 돌렸고, 육개장, 전, 김치, 흰쌀밥 등이 바지런히 놓인 식탁을 바라보며 장례식장에 손님이라는 신분으로 온 사람들의 대화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어머머, 자살이 뭐람.”

“걔 예전부터 심상치 않긴 했어.”

“근데 부모들이 그 아이의 자살을 예감하고 있었다면서?”

“어머머, 근데 부모들이 대체 뭘 한 거래? 안 말리고?”


등등의 질 낮은 싸구려 대화들.


“미라야. 나는 너를 안지 일 년이 지난 지금 너의 장례식장에서 네 이름을 알게 됐고, 불러보게 되네. 네가 이런 식으로 저런 천박한 아주머니들의 가십거리가 되는구나.”


젓가락으로 제 몫으로 놓인 따뜻한 흰밥을 쿡쿡 찌르며 저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했었습니다. 한 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서준이에게.

안녕?

이 편지는 내 장례식장에서야 너에게 건네질 것이야. 정신없는 상태에서 너는 내 편지를 읽어 내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너에게 건네는 마지막 내 인사는 아주 상투적이다 못해 어이없다고 느껴질 만큼 담백하네.

갑작스러운 나의 죽음을 접할 너에게 나의 죽음이 얼마큼 진행되어있는지를 솔직하게 말하자면 졸업 전시가 끝난 지금 나는 이미 내 죽음에 관련해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고, 이제 실행에 옮기면 돼.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이런 식이어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너에게 용서받을 마음은 전혀 없어. 나는 네가 상처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그냥 너는 나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제멋대로이며 이기적인 계집애라고 손가락질하면 돼. 처음 대학에 입학했던 순간부터, 나는 졸업 전시회가 끝나면 죽을 생각이었어. 그 치열했던 학창 시절을 거쳐 대학생이 되었고, 그토록 원하던 대로 그림을 그렸지만 나는 내 삶의 매 순간이 행복하지 않았어. 미래에 대해서 불안했고, 잡히지 않는 관계들에 우울했으며, 헤어졌다 만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삶에 진리를 깨닫고는 공허했다.

‘영원’을 믿었던 순수한 내가 점점 사라져 갔어.

학창 시절 땐 세상의 모든 걸 믿었지. 사람을 믿었고, 영원한 관계를 믿었으며, 열심히 하면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꿨어. 그 시절 나는 많은 것들을 믿어 반짝반짝 빛이 났지. 그래서 좋은 미대에 오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공부와 입시 미술에 집중하며 보냈고, 대학을 와서 개인 작업을 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보냈어.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내가 왠지 이렇게 틀에 박힌 나날들을 살다가 삶에 대한 공허만을 깨우친 채 죽을 것 같았어. 나는 ‘틀’에서 자유롭고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꿈을 정했는데, 화가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 생활에서 많은 것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거야. 이러다 내가 나이를 먹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곁에 있는 사람과 뻔하디 뻔 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보니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늘,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선택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어.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고,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매번 죽어간다 는 사실도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무서웠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매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았다 죽었다는 반복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고, 이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아팠다.

사실, 이건 비단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 텐데, 유난히 이 문제는 나를 너무 괴롭혔어.

그때부터였어. 이 모든 것들이 무서워서 죽기로 마음먹은 게.

근데 그 순간 너를 만난 거야.

나를 향한 반짝반짝 빛나는 감정으로 가득 찬 너를.

사실, 나는 처음 너를 본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 입학식 날 나를 빤히 보던 너를. 그래서 네가 보일 때마다 나는 너를 시선으로 따라다녔다. 그것도 꽤 자주. 그래서 그 여름날, 너에게 말을 걸었던 거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동경했지만, 너를 믿진 못했던 것 같아.

너와 지금은 당장 이렇게 좋고 행복하지만 언젠가 네가 떠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함을 이겨냈어야 했는데, 이겨내질 못했고, 매번 사랑이 주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졌어. 아마, 이 불안함을 이겨냈더라면 너의 곁에 평생, 있었을 수 있었을까? 가끔 눈을 감고 상상해봤어. 너의 곁에서 꽤 오랫동안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 사랑.

행복하고도, 위태롭고, 슬프고, 화려한 너와 나의 시간들을 잊지 말아 줘. 부탁이야. 이런 식으로라도 너에게 평생 기억되고 싶어. 그러니 부디, 나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해줘. 사랑해. 이것만큼은 진심이야.』


“나쁜 년. 내가 너 꼭 잊고 말 거야.”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그녀의 부탁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겠노라고.

그녀의 죽음 이후로 저는 피폐해진 채로 매일 술을 마셔댔고 쓰디쓴 소주를 연거푸 마시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했던, 그녀와의 이별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니 새빨개진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무수한 날을 지새웠습니다.

술에 취한 날은 무슨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질 않습니다. 비틀비틀 거리며 나쁜 년, 나쁜 년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고, 잊지 않을 테니 제발 다시 살아 돌아와 달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보고 싶다고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10년이 지났네요.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잊겠노라고 다짐했던 저는, 바보 같고 미련스럽게도 그녀의 편지처럼 그녀를 잊지 못했습니다. 10년 동안이 나요. 그녀와 나눈 근 6개월간의 추억들이 저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채 10년이라는 긴긴 세월 동안 저를 지배해왔습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녀의 기일엔 국화꽃을 들고 그녀가 곤히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했습니다. 매번, 이번 해에는 가지 말아야지, 이번 해에는 가지 말아야지 하지만 기어코 저는 그녀의 납골당으로 향하게 되더군요. 그곳에서 그녀의 유골이 담긴 그릇을 보며 그녀에게 말을 건네곤 했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대로 당신을 잊지 못하고 있어. 좋아?’


이런 식의 말 혹은


‘내년에는 기필코 오지 않을 거야. 그런 줄 알아,’


식의 말들을 말이죠.


세월이 흐르며 이젠 그녀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갔고, 지금의 저는 10년 전 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그녀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곤 합니다. 처음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니 견뎌지더군요.

또, 언제나 죽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이런 식의 회고에서 끝이 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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