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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Dec 01. 2020

나는 다시 외로워하고 말았어

그래서 이 추운 계절에 또 주저앉고 만 거야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고 있는 나는 매주 양극단의 분위기를 겪는다.

감사하게도 나를 보러 와 주는 친구들이 많아 누군가가 집에 놀러 와서 함께 웃고 떠드는 밝은 분위기 혹은 아무도 없어 고요함을 홀로 겪어야 하는 적막한 분위기. 둘 중 하나.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가라앉는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침잠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 고요함을 겪어 내다 보면 외로움이란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외롭고 고독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가족, 친구, 심지어는 연인에게 조차도. 


이런 나날들을 버티다 못해 외로움의 끝을 달리던 날, 친구에게 나 감정적으로 외로운 것 같아.라고 털어놓으니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 나는 예전부터 언니가 신기하긴 했어요. 왜 연인에게 소유욕, 집착, 질투 이런 걸 잘 안 해요? 언니는 굉장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연인에겐 좀 무덤덤한 편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연인에게 무심한 편이었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쿨한 어른의 연애'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종종 이 틀을 유지하는 것이 버거웠다. 나라는 사람은 외로움도 많이 타고, 소유욕도 심하며, 구속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인 앞에서는 내 본연의 성격대로 행동하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연인에게 많은 의지를 하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그들이 안심하고 남자 친구에게 기대는 게 좋아 보였다. 가끔은 자기 내키는 대로 구는 것도, 그 행동을 알면서도 받아준다는 그들의 남자 친구들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나 또한 남자 친구에게 의지를 해보려고 노력해본 적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어쩌면 연인과 나 사이에 세워진 벽을 허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도 같다.


적당한 거리감과 적정 온도를 매번 유지하려고 애썼던 나의 연애들.

연인이라도 어차피 헤어지면 남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기에 나의 결핍, 외로움에 대해서 공유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인색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였다.

어떻게 서든 독립적인 여자로 비쳐야 한다는 강박,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집착,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것에 대한 광적인 결벽 증세, 연애 중에 헤어짐을 미리 준비하는 자세 등 강박, 집착, 결벽증 및 자세가 뒤섞여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 결과물은 너무 건고해서 부수려고 해도 부서지질 않아서 그냥 방치해뒀더니 가끔 나를 외롭게 만드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나를 찌르곤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행복한 연애를 하면서도 불행했고, 때로는 스스로 감정의 벼랑 끝으로 몰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외로움이 마음을 강타하여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나는 내 연인에게 이러한 나의 히스테릭함을 들킬 것만 같아 연락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의 연락도 무시한 채로 한참을 침잠하였다. 그러나 금방 끝이 날 것만 같았던 감정이 소용돌이가 점차적으로 커지더니 나를 좀먹기 시작하여 결국 친구에게 SOS를 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연인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편이지."


한참을 친구와 대화하다 나의 이런 마음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나와 헤어진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말도 이쁘게 하고, 행동도 선하고, 이해심도 깊고, 배려도 잘하는, 참 이쁜 여자 친구 만났었다.'라고 그 사람들에게 존재하길 바랐다.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서 허무하게 잊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사귀는 순간만큼은 모든 걸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인 남자 친구에게조차 깍듯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감정적으로 위태로워서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의 여유로움이 없던 날, 나는 또다시 외로워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지, 이러한 감정 상태로부터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그에게,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가, 마음에 허기가 진다."


라고만 말하며 내가 또 주저앉아버렸다는 것은 생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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