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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Jan 29. 2021

자기소개서

내 이름은 은성

끝 은 (垠), 이룰 성 (成).

사실 저 은 (垠) 한자에는 땅 끝, 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가장자리, 낭떠러지, 벼랑, 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형상(形狀) 등의 의미가 담겨있지만 나는 내 이름을 한자로 말할 때 끝 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끝을 이룬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내 이름이 좋아서. 그리고 언젠가는 이름처럼 끝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


지금은 내 이름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그 이유는 현재 내 이름이 좋은 이유와 동일하다. 어릴 적 나는 내 이름의 무게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훌륭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내가 그 이름대로 살질 못하는 것 같아서. 부모님이 이름이라도 잘못 지어주었다면 나의 실패의 원인을 '이름'탓으로 돌릴 수 있는데, 나에겐 마지막 변명거리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 이름이 대충 지어졌던 이름이었다면,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다면, 내가 자꾸만 꼬꾸라지는 원인을 이름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이름을 평범한 여자 이름으로 바꿔달라 떼를 썼었다. 적당히 지어진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명을 하진 못했지만.


이름과는 달리 청소년기 시절 어른들의 세치 혀에 따라 '실패작'의 삶을 살았다.

복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많았다. 전교 1, 2등을 달리면서 착실하게 모범생의 길을 지나 의대 법대, 하다못해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교 대상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 친인척들 또한 전부 엘리트였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와는 거리가 있는 내가 '실패작'처럼 느껴졌으리라.

나는 하고 싶은 공부만 했고, 하기 싫은 공부는 하지 않았다. 국, 영, 수, 사, 과는 즐겁게 했기 때문에 모의고사에서 두각을 냈지만 내신은 영 꽝이었다. 게다가 예술적 기질이 강해 결국 나는 예대 쪽으로 진학했다.


흑색과 백색으로 가득 찬 내 주변의 엘리트들.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찼던 나.

주변과 극단적으로 달랐던 나는 늘 손가락질과 지탄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실패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도 흑색이었다면, 백색이었다면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았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10대와 20대를 암울하게 보냈다. 이름처럼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을 땐, 예술을 포기하고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들이 실패작이라고 말했던 나는, 해외 명문대를 졸업하고 돌아와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나는 더욱더 '엘리트'타이틀에 집착하였다. 그러나, 작년 9월을 기점으로 그 '엘리트'타이틀을 따라가는 것을 관두었다. 계속해서 높은 기준치에 나를 끼워 맞추려다 보면, 나는 나를 평생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후 작가 생활을 하겠다고 확실하게 마음먹었다. 사회가 규정한 성공한 사람에 속하진 못하더라도 내가 행복한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금속을 만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내가 행복한 것을 하자고. 그리고 천천히 나만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집착하던 '타이틀'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기로 했다. 또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각자의 인생의 속도는 다르며 나는 다 주변인들과 다르게 천천히 나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32살이 돼서야 겨우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 이름처럼 거창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성취를 하면서 나는 내가 비로소 내 이름과 같은 삶을 향해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들어준 내 이름 은성.

나는 부모님의 살아있는 유산으로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천천히 찬란한 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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