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고 정리한 기념으로 작업실을 공유하는 언니와 함께 9-10월에 몽골로 15박 16일 여행을 가려했다. 단둘이서만 투어사를 끼고 갈 경우 인당 대략적으로 600만 원. 엄청난 금액에 가난한 작가 지망생이 쓰기에는 말이 안 된다고 느낀 언니가,
“ㅇㅇ아. 너 진짜 곰곰이 생각해. 너는 지금 이 돈을 여행에 쓸 때가 아니야. 너는 그 돈으로 해외 부스를 빌려 전시를 하거나 레이저 커팅 기계를 사서 네 작업에 더 몰두해야 하는 타이밍이야!”
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언니 나는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어.”
라는 나의 말에,
“ㅇㅇ아, 줄곧 느끼고 있었는데 넌 왜 이렇게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거야? 너의 현 삶을 들여다봤을 때 사라지고자 하는 이유가 있어? 너를 계속 괴롭히던 문제는 네가 깔끔하게 해결했고, 너 행복하게 작업실 차렸고, 작업도 너무 잘하고 있고, 작품도 너무 멋있게 나왔고. 귀여운 강아지도 있고. 네가 네 삶으로부터 도망쳐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잠자코 듣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긍정하자,
“너 그거 습관성 사라짐이다? 이제 앞으로 너의 습관성 사라짐 안돼. 너 사라지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컨펌받아. 내가 너에게서 이유를 듣고 이게 합리적이라고 판단이 되면 네가 사라지는 거 용인해 줄게.”
대화가 종료되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라지고 싶어 했었는지. 그리고 내가 말하는 ‘사라짐’의 의미가 유독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한 도망이었던 것인지. 그렇게 입버릇에 대해 생각하다 마음 한편 깊숙이 숨겨뒀던 트라우마를 마주 보게 되었다.
나는 인생의 길을 선택하면서 의지대로 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타인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설령 내가 아니,를 말했어도 의지와는 다르게 끌려다녔다.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지 못했던, 독하지 않은 성격도 한몫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서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취했던 것이 두 가지뿐이었다.
유학길에 오르는 것. 그리고 호성이를 데리고 온 것.
영국에서 돌아온 2017년, 29살이었을 때 내 선택 한 가지가 끝이 났지만 호성이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삶에 자의로 한 선택 하나는 존재함으로. 그리고 작년, 노년을 보내는 강아지의 발을 붙들고 엉엉 울며 나의 선택이 이 세상에 존재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기대감과는 달리 늙은 시바견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이제 더는 내 선택이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황망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그렇게 한 줌의 재처럼 흩어져 사라질 수 있다면.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스스로를 야금야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하며 살다 언니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 나는 작업실을 구해 밤낮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있으며, 호성이를 닮은 귀여운 강아지가 생기지 않았는가. 비록 여전히 이름 없는, 작가 지망생에 불과할지라도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으니 이렇게 충만한 삶이 어디 있으며, 내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잡아주는 동료도 얻었으니 운까지 좋은 셈이다.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할 만큼 내 삶은 불안정했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족을 모르는 성격 탓일지도, 행복을 담는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해서 그런 걸지도, 불안을 쉽게 느끼는 성격 탓일지도. 아니면 명확한 것을 추구하는 성격에 비해 삶은 이토록 불투명하여 비틀비틀 걸어 나가는 시간들에 대한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토록 모든 것이 어렵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마음속 한편에 밀어 넣고, 사라짐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벗어나겠노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