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은성 Apr 22. 2024

2024년이 된지 4개월이 지난 시점

아프지 않은 내가 되었다.

많은 것을 정리했던 작년을 뒤로하고 올해, 나는 많이 변했다. 소중하게 쥐고 있는 것이 나를 햘퀸다고 할지라도 보듬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에 가차없어졌다. 정리해야만 했던 인생의 상흔들은 정리하며 내가 나로서 굳건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창작활동에 몰입하며 지냈더니 어느덧 4월의 끝자락이다.


4월 초에는 인생의 시련을 제대로 겪고 있던 나를 걱정하던 아이를 만났다. 둘 다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라 서로 잘 지내겠지,라며 정말 큰일이 있지 않는 이상 연락을 잘 하지 않는데, 풍파를 제대로 맞고 있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한 달에 한 번 전화하여 안부를 묻던 이 아이의 다정함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만남도 재미있었다. 청계천을 함께 거닐며 나누는 대화가 담백해서 좋았다.


4월 중순, NY언니를 봤다. 언니와 나는 연년 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얼굴 보며 농도 깊은 수다를 떤다. 똑똑하고 통찰력 강한 언니와 나누는 대화로부터 보석 같은 말들이 쏟아지는데, 그 보석들을 늘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번에 나온 대화 중 하나. 나는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고, 남들과 똑같이 무난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는 말에 언니는,


“은성아. 너 멀리서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가까이서 보면 그들 또한 각자만의 삶의 무게가 있지. 다만 그들은 너와 달리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 거고. 네가 계속해서 네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근데 ㅇㅇ아, 감히 말하건대 너에게 예측 가능한 삶이 주어지면 넌 금방 그런 삶으로부터 탈주할 것 같은데?”


라고 했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숨 막혀 죽을 타입이다.


4월 말로 넘어가는 지난주 금요일에는 SR언니와 한잔 기울였다. 동네 친구인 언니와는 작년에 붙어 다니며 많은 대화, 경험, 술을 나눴는데 올해부터 둘 다 현생이 바빠져 많이 만나봤자 한 달에 한 번 겨우 만남이 성사된다. 언젠가 언니가 말했던,


“은성아, 넌 고독하더라도 예술가로 살아가. 너는 그게 맞아.”


라는 말로부터 작가로서 많은 원동력을 얻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 나눈 대화들도 어김없이 즐겁고 쫄깃했다. 예술가로서의 삶, 운동, 사랑, 사람 등등. 주제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나무 가지들처럼 여기저기 파생된다. 이러한 우리의 대화 방식이 난 참으로 좋다.


나의 인간관계처럼 작업도 무탈하게 진행되고 있다.

12월, 작업실을 구해 나온 이후로부터 미친 사람처럼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진행했는데 어느 정도 작품 개수가 늘어난 4월부터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널찍하게 하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던 꽃들과 함께, 인간 김은성의 삶 또한 즐겼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던 공모전 소식들이 하나 둘 오는데 공모전을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10월에 김포에서 국제전을 하며,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는 서진 아트스페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공모전에 포트폴리오를 넣으며 공모전에 떨어지기도, 붙기도 하겠지만 떨어지면 떨어졌구나, 크게 실망하지 않고 붙은 것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이런 사소한 자존감 지킴이가 필요하다.


글만 보면 좋은 만남,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 같겠지만 어이없고 황당한 일들도 많이 겪었다. 근데 예전과 달리 아픔과 슬픔을 오랫동안 끌고 가지 않는다. 설령 격앙된 감정과 함께 겨우 잠에 들더라도 다음날 눈을 뜨면 말끔해지고 심플해진다. 그러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명료하게 보인다. 인생에 큰 이벤트도 배짱 하나만으로 쉬이 치러냈는데, 이 까짓 게 날 괴롭힐 순 없다는 생각과 함께 단순해진다.


삶에 미련이 없어 매번 죽고 싶어 하던 내가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혹시나 바뀔지 몰라,라며 미련 두었던 모든 것들을 칼같이 버리니 해방감마저 든다. 억지로 지었던 미소에 이제는 진정성을 담기도 한다.


희한한 일이다. 나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아프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습관성 사라짐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