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서울 공예 박물관에서의 전시 서약서 및 인터뷰 개인정보 관련 서약서에 싸인 완료, 작업실에서의 인터뷰 및 본 인터뷰까지 완료하였다. 공모 선정 연락을 받은건 꽤 됐는데, 이제 엎어질 일은 없으니 글로 풀어보려 한다.
유리지 공모전 결선 20인에 선정됐다. 5월 17일, 서울 공예 박물관 학예사분들이 내 인터뷰를 따러 작업실로 오셨다. 사람들 앞에서 촬영까지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얼굴로 열이 많이 갔는지 한시간 가량 되는 인터뷰의 끝자락에선 불타는 고구마가 됐다. 그리고 6월 10일, 본 인터뷰까지 마감하였다. 피디, 오디오, 조명 감독님들까지 대동된 촬영이어서 긴장한 나머지 로봇이 됐다. 무대 체질은 아닌지라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하게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나름대로 씩씩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지부진한 작업물을 생산하는 작가 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러다 이렇게 멈추면 안 되겠다고 결심한 후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제대로 시작했던 작가 생활. 신진작가로서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해 정말 절박하게, 또 부지런히 창작활동에 몰두함과 동시에 공모전에 도전했다. 현실에 주저하지 않고 나아간 결과 6개월 만에 개인전 및 초대 개인전이 예정된 작가가 되었고, 더불어 서울 공예 박물관에서 주체하는 공모전에 선정된 작가가 되었다. 이 대조가 가끔 나조차도 어색하여 이게 현실이 맞나, 의아하다. 때로는 이게 현실일 리가 없어, 라며 기분 좋은 현실 도피를 하기도 한다.
유리지 공모전 선정 작가 인터뷰 때, 그런 질문이 있었다. 당선된 소감이 어떠하냐고. 나는 자기 확신이 많이 흔들리는 사람인데, 이 당선이 작가 생활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 답했다.
작가는 자기 확신이 강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재능이 있다고 믿고, 이 재능이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확신. 나는 그렇지 않다. 매번 흔들리고 위태롭다. 나를 지지해 주는 경험을 해 본 적이 많지 않아 쉽게 무너지는 편이다. 주저앉았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관성적으로 정체되곤 한다. 그러나 작업실 동지가 엎어지는 나에게 매번 손을 내밀어 주고 정신 차리라며 채찍질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작업을 하겠다며 깨작거리다 동료와 작업실을 차려 작업에 올인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롯이 작업에만 투자한 건 6개월 차다. 어찌 보면 막 태어난 아기 같은 상태의 작가지만, 이런 다양한 성과를 내는 것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상황에 맞는 공간을 찾은 것도, 에너지 넘치는 작업실 동지를 만난 것 또한.
이건 내가 수십 번 수백 번 이야기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감사하다.
작업을 하다 보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으니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작품 하나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고 욕심부리다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앞서 인터뷰에 했던 말처럼, 주제, 재료의 한계를 두지 않고 정형화된 작품이 아닌 회화와 공예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작품을 천천히 만들어나가자, 다짐한다. 그렇게 단계별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겠지.
예술가로 산다는 건 고되다. 정답이 없는 길을 걷는다는 건 나같이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도전과도 다름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선망하는 ’ 공감’이라는 감정을 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