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은성 Jul 03. 2024

소설을 쓰려한다.

제목은 구속의 노래.

‘너는 아마 모를 테지. 내가 너에게 얼마나 날 선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너를 위해 다정한 사람인 척 구는 나를 너는 막무가내로 믿었다. 그리하여 그 몹쓸 믿음에 부합하고자 내 안의 거무튀튀한 감정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 음습한 감정들은 이따금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나를 괴롭히곤 한다. 그래, 지금처럼.

네 찰나의 생각마저도 손에 쥐고 싶었던 밤. 나는 너를 그대로 으득으득 씹어 삼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너를 전부 알 수 있다면 나는 너에 대한 감정을 덜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너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은 그저 주인이라면 꼬리 치는 개와도 같아서 네가 최악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너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 것이다. 그래, 이미 나는 너라는 사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해맑은 두 눈으로 나를 빛나게 쳐다보는 너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너는 나와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같이 어여쁘게 투명하다. 진흙탕 같이 질퍽거리는 내 더러운 사랑에 감히 너를 오염시킬까 두렵다. 이런 내 처절한 감정들을 아마 너는 모를 것이다. 그리하여 나만이 알 수밖에 없는 구질구질한 낡은 사랑. 그것을 그저 너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것으로 흘려보낼 밖에. 그리하여 우리의 세계가 견고하게 지켜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것이든 할 것이다.’


-구속의 노래, 윤결.


일요일에 친구와 구상 중인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목만 정해두고 구체적인 시놉시스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한 남자의 광적인 사랑 이야기. 집착적이고도 집요한 누군가를 향한 갈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유난히 쓰고 싶은 문구,


‘네 찰나의 생각마저도 손에 쥐고 싶었던 밤. 나는 너를 그대로 으득으득 씹어 삼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너를 전부 알 수 있다면.‘


나와 정반대의 연애.

언젠가 twin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언니는 생각보다 남자 친구들에게 무덤덤한 편인 것 같아요. 감정 표현에 있어서 선이 있다고 해야 하나? 언니는 외로움도 잘 타는 편인데, 그 사실을 언니 애인에게는 잘 공유하지 않잖아요. 언니의 본모습을 드러내면 좋을 텐데.”


명확함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었는지 불투명한 감정을 대함을 있는 그대로 즐기질 못했다. 늘 시작과 끝을 정해두어 냉랭한 연애들 밖에 하질 못했다. 상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으니, 선을 정해두고 사랑했다. 나의 사랑은 서걱거리는 겨울의 나뭇가지만도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 허구 속 주인공들로부터 내가 꿈꾸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투영시킬 수만 있다면 조금은 이 허기진 마음이 채워질 수 있을까.


추적추적, 열기가 가득한 비가 내리는 밤.

며칠 전에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 서 있었는데, 오늘은 땅에 닿으면 금방 부서져버리는 빗 속에 서 있다. 무더운 나의 현실과는 다르게 이 소설 속 시작과 끝은 겨울로 정해두었다.

시작은 흩날리는 눈 속에 해사하게 웃는 재희를 보고 반하는 윤열. 그리고 마지막으로 흩날리는 눈 속에서 해사하게 웃으며 출소한 윤열을 반겨주는 재희.


소설 밖 그들의 엔딩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나도 모른다. 미정이라는 뜻이 아니라 전과 기록이 있는 윤열과 그렇지 않은 재희의 현실이 천박하고 구질구질하게 흘러갈지도 모르기에. 직접 탄생시킨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내 마음속에서 모락모락 자란다면 스토리 자체를 통째로 엎을지도 모르겠다.


구속의 노래뿐만이 아니라 머릿속에 이미 많은 스토리와 캐릭터가 살아 숨 쉰다. 그 스토리 속 장면은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 본 것들이 세밀하게 들춰지거나 과장되어 쓰이기도 한다. 나를 스쳐 지나간, 그대들이 되기도 한다. 그림, 금속과 같이 소설조차도 나의 기록물이 되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의심하지 말지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