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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Aug 09. 2024

내가 창작활동을 하는 이유

살기 위한 발버둥이다.

부대끼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단단한 강철로 지내기도 하고,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날리는 들풀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 연약한 속살이 드러나는 경우는 대게 비슷하다. 평생 어렵고 고달팠던 일. 사람과의 일.


올 상반기, 내 손에서 흩어지는 인간관계를 움켜쥐지 않고 흘려보냈다. 어떤 이별은 법적 공방 직전까지 갔고, 어떤 이별은 일방적으로 잘라냈고, 어떤 이별은 차가웠다. 내가 이렇게 냉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음처럼 시린 이별 앞에서조차 냉랭한 것을 보면 어떤 이의 말처럼 내가 무심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무덥고 습한 여름이 왔다. 나는 이런 날씨에 취약하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습기를 죄다 빨아들이는 사람처럼 어디론가 향하는 걸음들이 무겁고 눅진했다. 이대로 가라앉을 순 없어 움직이다 보니 결국 한계가 왔다. 어떤 사람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며 무기력해졌다. 일주일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침대 위에 누워 피부를 스치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만 집중하며 5일을 버텼다.

도망치듯 동굴로 들어가며 안정감을 찾는, 이다지도 볼품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는 삶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대로 눈 감듯이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 목숨 따위 내던질 수 있을 만큼. 그러나 29살, 엄마와 한 약속 ‘자식 앞세운 부모 만들지 말라.’ 때문에 여즉 살아내고 있다. 삶이 기꺼운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촘촘히 사용하면서. 사실 저 약속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는데. 나는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죽든 살든 그것이야말로 오롯이 내 선택에 따른 일인데 이상하게도 저 약속은 죽음 앞에 뛰어드는 나를 매번 잡는다.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울, 고독, 불안, 분노가 되어 나를 집어삼킨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쳐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늪과 같은 형태로.


그리하여 나는 이 부정적 감정들을 배설한다. 내가 건강한 정신으로 살기 위해선 ‘배설해야만 한다.’ 가 더 정확하다. 이 배설 욕구는 나에게 창작활동이 되었다. 매체는 상관없다. 글, 금속, 그림 무엇이든 쏟아내기만 하면 된다. 감정을 정교하게 토해낸 작품 앞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작가 생활 중이다. 이 여정 속에서 장기적 휴식을 취한 적은 있지만 작가가 되기를 그만둔 적은 없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내가 불투명한 길을 걷고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여타 모르는 사람들이 예술이 돈이 돼? 라고 비아냥거릴지라도 나는 감정의 방출이 주는 안정감을 찾아 떠나겠다.


작업실을 구하고 벌써 8개월 차다. 쉴 틈 없이 작업하다 보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유리지 공예 결선 진출, 국제전, 개인전, 대구 아트페어, 그리고 내년의 초대전.

개인전이 끝나면 해외 아트 레지던시 및 갤러리에도 부지런히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열정적이지만 안정적이지 않은 삶을 감당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쓰러지는 날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건강한 나로 살려면 창작을 해야 하니까.


누군가가 보면 돈 안 되는 것에 매달리는, 멍청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빚어낸 결과물은 때론 뜻깊다. 유리지 공예 결선 진출이 그러하다. 내 얄팍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도록 이 쾌거를 여기저기에 자랑해야지.


2024/08/27 - 2024/10/03 서울 공예 미술관에서 유리지 공예전 결선 20인 작품을 전시합니다. 다양한 공예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니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의 배설을 보러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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