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기다렸던 유리지 결선 20인 기념전이 시작되었다. 이 전시가 시작되기 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기존에 당선된 사람 중 한 명이 결격 사유가 생겨 그 공백을 채운 작가였고 그래서인지 모든 게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작업실 인터뷰 및 심층 인터뷰 등. 출품 이후 시간이 꽤 흐른 터라 작품 색이 습기에 바래져 다시 다듬어야 했고, 학예사가 요구하는 자료도 꽤 있어서 정신없이 준비했다. 개인전도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정신력에도 한계가 왔다. 그렇지만 쉽게 퍼질 순 없어서 이 악물고 준비한 결과 꽤 큰 무대에서 내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행복했다. 작가로 다시 살겠다고 마음먹은 후 창작된 내 첫 작품. 그것으로부터 내가 형편없는 작가는 아니라는 객관적 확인을 받았으니 앞으로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막식 때, 다양한 감정들이 심연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다른 작가들은 나와 다르게 이 씬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 취향은 탈 수도 있겠지만, ‘공예’로 정의되는 작업들. 그 속에서 나와 내 작품은 옥에 티처럼 순수예술과 공예 그 어디에선가 방황하고 있었다. 마치 흰색 검은색 어디에도 끼지 못한 회색분자 같았다.
공개적으로 다 적진 못하지만 서러운 일도 있었다. 의도한 차별은 아니었지만 차별도 받았다. 화려했던 개막식이 끝나고 조촐한 5평짜리 작업실에서 신진 예술인 패스를 지원하며 작업실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대문자 T인 언니조차 나의 서러움을 이해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더라. 라며.
당선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긍정적인 면모보단 부정적인 부분을 먼저 흡수하는 사람인지라 별것 아닐 수 있는 것에도 마음에 쉬이 금이 간다.
신진 예술인 신청에 필요한 자료를 꾸역꾸역 수집하며 난 뭘 하는 사람인가, 혼란스러웠다.
금속을 만지는 사람인 걸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걸까, 글을 쓰는 사람인 걸까. ’ 작가‘로 묶어도 될 텐데 왜 구분 짓는 걸까. 나는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나는 대체 뭘까.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나는 아직도 내가 뭘 하는 작가인지 정의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카테고리 앞에서 방황하는 꼴이 꼭 내 인생 같아서 우스웠다.
그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헝클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이 인생의 묘미일지라도 이 부정확성에 약한 나는 매번 휘둘린다. 그렇기에 남들에 비해 강렬하게 느끼는 삶의 구비 진 굴곡들. 짧지 않은 36년의 생과 비례하여 쏟아지는 괴로움. 이러한 감정적 침잠을 겪을 때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 덧없는 인생의 서슬 퍼런 시련 앞에선 그 무엇도 나의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니.
정답 없는 내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충동적으로 짐을 쌌다.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바람처럼 떠났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여행지에 도착했지만 계획형 성격은 어디 가질 않는지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모든 일정을 짰다. 그것을 따라 익숙지 않은 길을 걸으며 내 머릿속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하나 둘 버렸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
인생의 모든 시련들을 다 대비할 수 없어. 그러니 그 시련으로부터 오는 감정들을 오롯이 감당해. 이것을 부정하지 말고 이젠 받아들여.
고통은 예전부터 너와 함께이니.’
짧디 짧은 도피 행각은 끝이 났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탈이 났다. 매일 밤샘 작업을 하니 몸이 엉망이었는데, 개막식 때 마음에 탈이 났고, 무리했던 도피는 내 보잘것없는 면역력을 무너뜨렸다. 편도에 염증을 넘어선 농이 가득 차 임파선까지 영향을 주어 약이 몸에 돌지 않을 때면 칼로 목구멍을 긋는 느낌이나 비틀거리며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친구와 카톡을 하며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ㅇㅇ아, 넌 창의적인 작가야.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라고 생각해. 너는 기존의 카테고리를 반드시 따라 한다고 생각해? 기존의 카테고리들도 결국엔 새로운 시도로 인해 하나의 카테고리로 만들어진 거고, 네가 가고 있는 길이 기존의 카테고리에 없던 무언가라면 네가 그 길의 개척자인 거지. 네가 순수예술과 공예, 그리고 글 쓰는 걸 한 군데 모아서 작품화하는, 작가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품화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넌 개척자야. 이걸 잊지 마. 넌 근거가 충분해. 너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지 마.”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주는 위로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위로가 나를 울린 밤도 있었다.
회색분자, 그러나 개척자.
생각해 보면 난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이 없었다. 성격이나 취향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할 만큼 이질적이어서 타인들과 섞일 때면 외롭고 고독했다. 이러한 기질이 작업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 독특한 성향 탓에 삶에 다양한 희로애락이 있어 그 감정들을 글로 쓰고 작품으로 만드는, 이게 나인데.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를 마음속에 새기며 살게 된 이후로부터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최대한 다 지워냈다고 믿었는데.
어김없이 불안감은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오고, 나는 그 불안정한 감정들에 정처 없이 휘둘리고.
그러다 또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에 다시금 일어날 힘을 얻는, 잔인할 만큼 연약한 인간이 나라서.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고, 슬픔에 젖어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로 내 남은 생을 떠돌다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