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때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마친 겨울방학, 아버지를 졸라 통기타를 샀다. 아무리 조율해도 그 음이 그 음 같은 그런 통기타였지만 열심히 튕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광 음악출판사의 ‘최신 통기타 교실’을 사서 혼자 코드를 암기하고, 핑거링과 스트로크를 연습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성당 고등학교 학생회에 들어가 선배들이 치는 기타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기타 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성가부를 때 반주를 할 수 있게 되고, 많은 행사나 야유회에 서 기타 반주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은 약간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기에 아마 더욱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최초의 무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공주 왕촌에 소풍 가서 ‘일기’라는 노래를 반대표로 불렀다. ‘물소리 까만 밤 반딧불 무리, 그 날이 생각나 눈 감아 버렸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이고, 특별히 어려운 고음도 없는 평범한 발라드였는데 고교 친구들은 그때를 기억하며 나와 이 노래를 대입하는 경우가 지금도 있다. 이렇게 나의 무 대 공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박범석이와 하사와 병장의 ‘목화밭’을 듀엣으로 불렀다. 화음도 넣어가며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지금도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대학 2학년 가을, 영어과 예술제 무대에서 'J에게'와' feelings'를 불렀다. 당시 J에게는 이선희가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 대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노래를 영어로 번역하여 불렀는데, 며칠 후 대학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축제 준비 일화와 기타 학교 생활 이야기를 하고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며 40 분 정도 출연하는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NG가 많이 나서 2시간 이상 녹음했던 것 같다. 방송이 나오는 날,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함께 들으며 웃었던 추억이 새롭다.
1980년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흠모하고 열광하면서, 대 학 가요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은 있었지만, 언감생심 그 당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50대 중년이 되어 밴드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2013년 3월 캐나다 파견을 마치고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교육정보원으로 복귀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다. 출판사 담당자와 업무 관련 협의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모 출판사 방모 실장이 직장인 밴드에서 싱어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에게 직밴에 대해 호기심 어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밴드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는 연주 실력은 떨어지지만 열의와 열정이 대단하다고 했다. 방 실장이 속한 밴드는 의사, 퇴직한 공무원, 회사원 등 사람들로 구성되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공연하며 어울리다 보면 사람 사는 느낌이 좋다고.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아 늦은 나이에 밴드를 시 작한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분기별로 영등포에 있는 노숙자 쉼터, 교도소 등에서 노숙자들과 수감자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마치 대학 재학 중에 마음속에 있었던 대학가요제에 대한 호기심이 되살아나고, 직밴은 그 정도 프로가 아니어도 순수 아마추어로 걸음마 단계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터넷에 서 직장인 밴드를 검색해보았다.
직장인 밴드는 전국적인 붐을 타고 직장인 밴드 경연대회나 그들을 활용한 축제를 기획하는 전문 공연기획사도 속속 생겨나고 지자체나 기업 등 직장인 밴드를 초청하려는 공연 주최 측과 밴드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도 확산됐다. 이 와 함께 신촌 일대와 홍익대 근처, 건국대 주변과 방배동을 중심으로 직장인 밴드를 대상으로 연습실을 대여해주는 스튜디오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직장인 밴드가 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주로 직장동료나 친구 등 가까운 지인을 중심으로 밴드가 결성됐다. 요즘엔 직장인 밴드 관련 인터넷 사이트와 카페가 늘면서 그곳을 통해 멤버를 찾는 ‘구인·구직’이 활발하다. ‘남자 보컬 구하는 분, 직 밴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가창력과 쇼맨십을 갖춘 강한 여성 보컬을 찾습니다’ ‘헤비메탈 드러머 구합니다’ ‘교사밴드 멤버 모집해요’ 같은 글이 수없이 올라 있다.『신동아, 2010.09.29 / 613호(p202~209)』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부천지역의 직장인 밴드 구인란에서 기타 리스트를 찾고 있다는 곳에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고 지원을 했다. 노래 반주 정도밖에 못하는 실력이지만 차츰 배우면서 하면 된다 는 방 실장의 권유가 나에게는 용기를 주었다.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목요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7호선 춘의 전철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오정동 근처에서 내려 약속 장소를 찾아보는데 비도 오고 날씨도 어두워서 약속 장소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전화를 다시 하여 위치를 확인하여 문을 여니, 지하에 있는 방음시설의 연습실들이 나타나고,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젊은이들이 이 방 저 방에서 나왔다가 들어가고, 노래소 리, 기타 소리, 드럼 소리 방마다 각기 다른 연주 연습 소리가 들리는 어수선한 공간이었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몰라서 다시 전화하니 어떤 젊은 사람이 아는 척하며 가까운 빈 방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기타를 주며 연주해 보라고 했다. 통기타 반주만 하는 정도 실력이 라서 독주 실력을 안 된다고 했더니 노래 악보를 주더니 반주 연주를 해보라고 한다. 아는 노래를 하나 골라 코드에 따라 연주를 했다. 반주를 한 짧은 곡이 끝나자 이 친구 하는 말, “아저씨, 박자를 전 혀 못 맞추네요”. 나의 얼굴이 빨개지고, 당장 그만두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고 뭔가 결론을 짓고 싶었다. 여기서 안된다면 직밴은 나의 사전에서 지워야지. 그리고 버 킷 리스트에서도..... 이 젊은 친구는 나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아 니면 아무나 사람이 꼭 필요했는지. 다음 주에 새로 시작하는 7080 밴드에 들어가서 연습하라고 했다. 일단 오디션을 통과한 셈이다.
첫 모임이다. 많이 긴장이 되었다. '밴드 구성원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퍼스트 기타는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 실력이 뛰어난 것 같고, 베이스는 조금 어린데 실력이 훌륭했다. 드럼은 의외로 여 자였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고, 싱어는 20대 초반의 아주 젊은 친구였다. 난 세컨드 기타. 첫 곡으로 조용필의 ‘여행을 떠 나요’를 연습하기로 했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생각만 해도 내가 그토록 희망하던 밴드 음악이 나에게 살맛 나는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것을 기대해 본다.
연습실에는 앰프, 드럼, 마이크, 기타 등 모든 악기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개인 악기나 그냥 피크만 가져가면 되었고, 매달 5만 원의 회비를 내야 했다. 목요일 저녁에 모여 2시간씩 연습하고, 고수의 지도도 받아가면서 밴드 음악을 한곡 한곡 완성해나가고, 1년에 1,2 회 정기 연주회도 있다고 했다.
드디어 첫 번째 연습이 시작되었다. 젊은 싱어가 뿜어내는 노래는 정말 신이 났다. 시작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음 악 속에서 같이 기타를 치면서 어울리는 것은 내 몸 안의 열정을 끌 어내 어 밖으로 발산하는 것 같았다.
퍼스트 기타가 기타를 사서 연습하라고 조언했다. 일렉기타가 있어야 연습이 제대로 될 것 같아서 당장 앰프와 일렉기타를 세트로 사서 집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앰프 소리가 커서 볼륨을 최소로 줄 여야 했다. 네 번째 연습에서 퍼스트 기타가 "아저씨, 연습 안 하고 오는 것 같다. 거저먹으려고 하면 전체 음악이 망치게 된다"는 말을 했다. 기가 막혔다. 집에서 엄청 연습하고 오는데......
그날 바로 집 앞에 있는 뭉크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했다. 오직 조 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연습하기 위해서..
그다음부터는 퍼스트 기타가 잔소리를 안 했다. 그런데 베이스와 퍼스트가 싸우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베이스가 나오지 않았다. 지도 자인 최모 실장이 베이스를 대신 커버하면서 연습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멤버를 뽑는 밴드는 멤버가 쉽게 교체되거나 팀이 해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친구나 가까이 지내 는 직장동료들로 구성된 밴드에 비해 결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악기 파트별로 멤버를 모아 구성한 밴드 가운데 서로 음악적 색깔이 달라 다른 팀을 찾아 떠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바쁜 회사일로 연습에 자주 빠지거나 하면서 팀원들 간 갈등이 빚 어져 결국 팀이 깨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까닭에 직장인 밴드가 멤버 교체나 해체 없이 수년간 유지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퍼스트 기타의 경우, 회사에는 비밀로 한 채 매주 연습실에 온다고 했다. “밴드 한다는 게 회사에 알려지면 정말 급한 일이 생겨 야근을 못하게 될 때 밴드 연습하려고 땡땡이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신경 쓰인다. 모르게 하는 게 속 편하다”는 게 이유다. 나도 직장동료들에게 직밴 활동하는 것을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 근무처를 옮길 때 말하였다. 회사 생활하면서 취미활동이나 학업을 하는 경우, 동료들에게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