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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Jan 03. 2023

미세 노동자가 되었다

데이터 라벨링을 시작하다

미세 노동 시장으로의 진입. 그건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사람들의 길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정확히는 떠밀려 나왔고) 짧은 시간의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었다. 보잘것 없는 경력과 애매한 나이, 딱히 좋지 않은 머리와 강하지 않은 의지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래저래 살게 될 거란 생각과는 달리 돈은 매달 늘 희한하게 많이 필요했다. 쓰는 데도 없는데. 떼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필연적으로 돈에 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돈은 더 벌 수록 좋은 거니까.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뭐라도 하길 바랐다. 플랫폼 일자리를 찾아보기도 했고, 본업을 살린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본업에 다시 집중하긴 싫었다. 본업이라는 말의 무게가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데이터 라벨링'이었다. 사진에 라벨을 지정하고, 영상을 듣고 받아쓰기를 하고, 사진에 있는 고양이를 찾기만 하면 월 몇 백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심지어 노트북만 있으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에는 월 수익 랭킹이 화려하게 게시되어 있었다. 한 주에 300만 원, 한 달에 2000만 원을 번 누군가의 닉네임이 보험사 영업현황 게시판처럼 꾸며져 있었다.


'해봐도 손해는 없겠다.'


이 생각이 시작이었다. 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입 닫고 있으면 아무도 내가 이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시간에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번다고 비웃음을 살 일도, 대학원까지 나왔으면서 고작 그러고 있냐고 핀잔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엄연히 '비대면 알바'니까. 1분에 수십 번의 클릭을 하며 몇백 원을 번다고 해서 무려 '대학원까지 나온' 나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닉네임 뒤에 숨은 나와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 간의 며칠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계약만 지속될 테니까.


그래서 데이터 라벨링을 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재택 작업만으로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그럼 정말 내가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지 않아도 이 일만으로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동안 경험해 왔던 여러 가지 나의 직업이 스쳐갔다. 본업을 가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지난날. 내가 가졌던 직업 모두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용서하기엔 책임감이나 양심 같은 단어의 무게가 무겁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은 일하는 시간보다 무슨 일을 할까에 대한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 버렸다. 지금의 내게 남은건 낮은 자존감과 사라진 업무 스킬에 대한 아련함 뿐. 이런 내게 데이터 라벨링은 숨어서 일하기에 딱 좋은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환상의 세계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미세노동 시장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이미지 출처 : https://kr-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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