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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Nov 28. 2021

시작도 없었고 끝날 것도 없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우린 여전히. 

  작년에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코로나19로 대구에 내려가 일을 하고 계신 간호사 선생님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간호사의 이야기로 다수의 대중들에게 그 정도의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던 것은 그때가 거의 최고이자 최초이지 싶다. 진행자들은 울고 있었고 그 모습이 아마 더 화제가 되는 데에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왜일까. 난 그 동영상을 며칠 전에서야 '용기를 내어' 보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그 동영상 클립을 보기까지는 1년 정도에 걸친 용기가 필요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라는 질문을 듣기 시작한 건 말 그대로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네 뭐.. 그렇죠.'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간호사 일 많이 힘드시죠?'라고 얘기를 들었던 건 간호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우린 원래부터 힘들었다. 밀려 들어오는 환자들에, 본인부터 해결해달라고 컴플레인하는 환자, 보호자에, 점점 나빠져가는 환자에 지쳐있었다. 코로나 19는 원래도 좋지 못했던 우리의 상황을 좀 더 좋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 코로나 19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힘듦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없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간호사라는 직업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대중매체에 많이 언급되고 대중들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의료인으로서 인식되기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선별 진료소'와 '코로나 19 확진자를 돌보는 파견근무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언제 어떻게 본인도 감염될지 모르는 위험을 담보로 일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은 대중들의 감정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유 퀴즈 프로그램의 간호사 인터뷰까지 이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다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의 '힘듦'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대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고, 사실 누가 우리의 힘듦을 대표할 것인가라는 걸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니까. 하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마음 한편에 두고 애써 무시하려고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도 힘든데..'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유퀴즈의 간호사 인터뷰를 드디어 보게 되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본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도 펑펑 울었을 것이다. 저 선생님은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계실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가 이 동영상을 보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울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우리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을 인정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우리 안에서의 편 가르기를 또다시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무섭고 두려웠다. 사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 보다 나와 내 주변의 똑같이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 모두와의 정서적인 거리를 두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워졌는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해가고 있음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고 있다. 


 1년이 훨씬 더 지난 시점에서도 우리는 아직 코로나 19 관련 거리두기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지 못했으며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리고 내년에도 아마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말은 괜찮겠지', '내년엔 괜찮겠지', '설마 내년엔..'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언젠가 끝이 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끝이 있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이다. 그 한가운데 있어 아직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뿐. 다만, 우리 내 힘듦은 끝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서 이제 좀 괜찮으시죠?'라는 질문을 받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똑같이 '네 뭐.. 그렇죠.'라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에게 끝은 없으니까. 


 응급실이라는 곳은 24시간 비어진 적도 멈춰진 적도 없다. 언제나 그곳에는 누군가가 불을 켜고 일을 하고 있으며 언제나 누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코로나 19와 관계없이 우리는 무언가 따로 시작한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끝날 것도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종결과 함께 정서적 거리두기 또한 사그라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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