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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Nov 05. 2022

검은 봉지를 추억하며...  

러시아에서 유학 중일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유학만 다녀오면 들어갈 수 있는 회사도 할 수 있는 일도 무궁무진할 것 같은 착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유학 갔다 오니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내가 가진 비루한 능력이라고는 러시아어를 잘하는 정도 밖에는 없었고, 러시아어만 갖고 취직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었다.  구인 광고를 기웃거리던 나는 우연히 러시아어 과외 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글을 남긴 사람에게 연락했다.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나는 그 학생과 과외 시간은 물론이고, 과외 비용까지 합의를 봤다.  그 학생이 사는 곳은 청주였고, 내가 사는 곳은 천안이었기 때문에 나는 과외를 하기 위해 매번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과외비는 합리적이었지만, 교통비나 길에서 버리는 시간 등을 따지면 조금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과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오셨는데, 아빠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검은 봉지에 있을 법한 내용물이라는 것은 붕어빵, 과일 등 먹을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 쓰인 한 마리 개처럼 침을 잔뜩 모으고 문제의 검은 봉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검은 봉지에 들어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소리까지 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있는 식재료를 사 오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을 즈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은 봉지 안에는 말라뮤트 새끼가 들어있었다. 오, 맙소사! 검은 봉지가 무슨 카트도 아니고, 가방도 아닌데 바닥도 없는 봉지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대구에서 천안까지 왔을 녀석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열악한 이동 수단을 견딘 녀석이라면 키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러시아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시베리아 개 말라뮤트라니!  게다가 조금 전까지도 나는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 쓰인 개가 된 기분을 느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지만 당시 우리는 반지하 빌라에 살고 있었고, 개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그 개를 봉지 안에 든 채로 대구로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반강제로 우리는 말라뮤트와의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다. 개를 키워보고 싶다는 바람도 없었고, 개의 심리 등에 관한 상식 따위는 정말 개나 줘야 할 정도로 비루했던 우리는 개를 키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앞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먼저 녀석은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어미 젖을 막 뗀 지 얼마 안 된 녀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녀석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사료를 먹어치웠고,  개 냄새도 상당했기 때문에 내가 청주와 천안을 오가며 힘겹게 벌어온 과외비의 상당 부분이 사료값과 샴푸 값 등으로 나갔다.  녀석은 많이 먹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예상을 처참히 짓밟으며 무럭무럭 컸다.  하지만 우리 중 개의 배변 훈련이나 산책을 시킬 줄 아는 사람은 없었고, 우리가 개를 길들이는지 개가 우리를 길들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녀석의 생활 패턴에 따라 하루 일과를 보냈다. 녀석은 일어나기가 무섭게 화장실에 산처럼 많은 똥을 쌌으며,  엄청난 양의 사료를 먹어치우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을 나가자고 보챘는데, 산책을 나가도 절대로 자신이 누군가의 애완견이라는 티를 내는 법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는 그래도 우리 손에 끌려다녔지만 어느 정도 크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가면서 주인 행세를 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양의 사료를 축내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몸에선 생각보다 냄새가 많이 났다. 반지하 집에 들어오면 개의 집에 우리가 얹혀살아서 개가 우리를 부리는 것인지, 우리가 개를 키우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우리 집에는 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녀석이 우리와 동거하기 불편한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일반적으로 녀석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은 엄마였고,  똥을 치우거나 산책을 데리고 가는 것은 내 일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교회 봉사 활동을 하시느라 집에 늦게 오시는 일이 잦았고, 엄마가 밤 10시에 오시든, 11시에 오시든, 12시에 오시든 개는 엄마를 정말 있는 힘껏 반겼다. ''왈왈! 왈왈! 왈왈!'' (엄마! 왜 이제 와요!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엄마도 녀석을 좋아하셨지만, 늦은 시각에 이런 환대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의 ''왈왈!''은 온 식구들의 관심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고, 결국 우리는 우리를 길들인 녀석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 후로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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