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더 중요한 것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덜 중요한 것을 차례대로 제거하여 마지막에 남은 것을 찾는 방법이다. 얼마 전에 100가지의 가치(위)중에서 두 번째의 방법으로 마지막에 무엇이 남는지 해보았다. 결과는 "목표", "성장", "용기"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마지막 남은 것은... “목표”였다. 내 정체성이 좀 더 정리된 느낌을 받았다.
단 하나
생각해 보니 나에게 목표란 그동안 나를 인도해 준 등대 같은 거였다. 유년시절 시골에서 태어나 통학길이 참 멀고도 험난했다. 편도 4km 비포장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녀야 했지만, 어린 내게 학교 교실은 꼭 당도해야 할 목적지 같았다. 어린 나였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갈 궁리를 하진 않았으니 참 대견스러울 법하다. 근성만큼은 칭찬한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마주하고 싶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면 현재의 고단함은 인내가 필요한 거라며 명분을 만든다. 힘든 과정이지만 성실하게 달려가는 것이 주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늘 목표가 선명해지면 기분이 좋았고, 푸른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 성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게 마련이다. 내겐 “두려움”과 “불안”이 큰 산이다. 사람마다 "산"의 종류도 다르고 그걸 넘는 방법도 다를 테지만, 나는 두렵고 불안할 때면 다소 모험적인 여행을 떠난다. 산 넘어 마을을 가야 하는데 산을 넘지 않고서는 마을에 당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넘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대상과 직면해 넘어서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만 그 시작점에선 늘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첫 번째 용기
'뛰자! 비행기 밖으로‘
첫 번째 용기는 군 시절이었다. 재수 없게(?) 공수부대로 차출된 후 1km 상공에서 낙하산을 등에 매고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훈련소에서 어찌나 두렵고 무서웠던지 잠을 이룰 수 조차 없었다. 내가 왜... 하필이면... "난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하면 육군의 보병사단으로 전출도 가능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뛰고 보자..." 공수교육 4주 종반, 구형 수송기에 올라.. 큰 용기를 내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두려움을 넘어선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험난했던 천리행군까지 마치며 무사히 전역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20대를 이끌어준 가장 큰 용기였다. 만약, 그때 포기하고 두려움을 피했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은 이어졌을 것 같다.
두 번째 용기
'날자! 샤모니 몽블랑에서'
두 번째 용기는 그로부터 10년쯤 흐른 뒤, 집채만 한 패러글라이딩 백팩을 메고 스위스 융프라우,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산)으로 홀로이 떠났을 때다. 당시 나의 비행 실력은 동호회를 따라다니는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랜 대기업 직장생활을 벗어나 첫 이직을 앞두고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에 두려움과 불안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행을 결정하기 까치가 더 두렵고 무서웠다는 것. 심지어 그때가 둘째 아이가 백일쯤이었으니,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고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여행을 간다며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고 나와서는 주차장에 숨겨놨던 거대한 가방으로 바꿔 매고 공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가 멀리 보이는 인터라켄에 며칠을 마냥 머물며 좋은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산 등선에 올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를 잡았다. 어렵사리 단독 비행에 성공하여 저 멀리 보이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가 병풍처럼 보이는 하늘에서 정말이지 잊지 못할 인생의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 다음 비행지인 알프스 최고 절정! "샤모니 몽블랑"으로 가차를 타고 다시 떠났다. 남성적인 위용으로 가득한 몽블랑산은 만년필 "몽블랑"브랜드의 설산의 만년설을 형상화한 마크로 유명하다. 산 중턱까지 리프트로 원웨이 티켓으로 올라 당도한 곳은 안전요원도, 안전장치도 전혀 없는 곳이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그냥 알아서 서바이벌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약 조난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패러글라이딩 날개를 설산에 펼쳐 놓고, 저 멀리 몽블랑 계곡에서 불어는 산바람을 기다리다 이때다 싶어 산 줄을 당겨 하늘로 이륙했다. 찬 바람이 헬멧 사이로 "쒜~~"하며 밀려 들어왔다. 저 멀리 펼쳐진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노라마 장면이 파란 하늘과 겹쳐 동공으로 선명하게 파고든다. 산사면으로 부딪혀 들어오는 사면풍을 이용해 고도를 올리길 몇 회.. 옆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유유히 함께 날고 있었다. 인생의 두 번째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내 힘으로 나만의 하늘에 왔다고!!”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겠어!!" 정말 큰 영감을 받았다. 이것이 나의 30대를 살게 한 용기였다.
무모할 수도 있는 일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장에 마중 나온 아내 … 엄청난 짐들을 본 아내의 표정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결혼 5년 차를 살면서 직면한 가장 큰 위기(?)를 지혜롭게 넘어가줬다. 두고두고 고마워할 순간이었다.
세 번째 용기
'걷자! 히말라야에서'
세 번째 용기는 다시 10년쯤 흐른 뒤였다. 40대 허리쯤 홀로 히말라야로 떠났다. 다시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커리어, 직업 등의 이유가 컸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기에 제1 베이스캠프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에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마르디히말 코스로 정했다. 하지만 혼자서 그곳에 간다는 것에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참아내며 참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북한산을 오르며 6개월 정도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네팔에 도착해서 수도 카트만두를 거쳐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에서 2일 정도 적응을 하며 마침내 히말라야 산속으로 향했다. 마침내 1주일 동안 척박한 산에서 지니며 고산병, 감기, 설사를 겪고 마침내 해발 5,000미터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내 옆에는 현지인 세파 조르제가 동행했다.
이른 새벽.. 사방은 구름으로 뒤 덥힌 하늘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법처럼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에서 해가 비췄다. "와~~~!!" 마치 희망을 보는 듯했다. 피부 솜털이 쫑긋쫑긋 서며, 눈물샘이 폭발했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그동안의 두려움과 불안이 눈 녹듯 사라져 내린다. 앞서 그 위대한 산의 정상에 우뚝 올라서려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용기를 생각하니 기분이 깊숙이 고무되었다. 난 무엇 때문에 이 고독한 길을 찾아왔을까. 이내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며 뭔가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너무 많은 고민과 불안이 행동을 가로막고 있었음을 알았다.
한국에 돌아와 얼마 후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를 졸업했다. 나만의 길을 찾아 좀 더 나답게 살겠노라는 중년으로는 때 이른 외침. 회사를 벗어나 이제부터는 생각한 모습대로 홀로 서 보기로 한 것이다. 그 후로 2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회사가 부여했던 정체성을 벗어나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체성이 떠오른다. 일도 인간 관계도 새로운 정체성으로 좀 더 선명해지고 있는 기분이랄까. 특히 라이프스타일은 더욱더.. 저 끝의 문을 열고 나가면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벽을 만들고
용기는 새 길을 만든다
우리는 늘 두렵고 불안함에 떨고 있지만, 정작 두렵고 불안하다는 것은 그저 느낌일 뿐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가 막연하고 모호할 때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를 더욱 괴롭힌다. 아무리 회피하려 애써봐야 불안이라는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쨍한 해가 떠올라야 비로소 안개가 사라지듯 두려움은 그저 벽을 만들 뿐, 용기가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뻔한 진리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과연 내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며 두려움과 불안에만 너무 집착하면 앞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두려움은 피한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담대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과 마주할 때 비로소 두려움이라는 구름이 걷히고 새로운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세 번의 모험 같은 여행으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큰 용기를 내어 세계적인 리더십 분야의 Guru! 마셜골드스미스 박사님과 어렵사리 연결되어 초대받아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를 통해 정말 다양한 교훈을 얻었지만 그중에서 리더십을 멀리서 어렵게 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혜안을 주셨다. 현실에서 실천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과 솔직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배우면서 실천해 나가는 것. 우리 모두는 인생을 이끌어 나가는 리더가 아닌가. 나의 경우 용기 끝에 홀로서기를 하였고, 인생의 스승을 얻었으며 그렇게 계속 새로운 길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였다.
두렵고 불안하니 인생이다. 하지만 “용기와 동행”할 때 비로소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