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an 10. 2024

식물을 돌보며 나를 돌보며

똑. 똑. 가지치기를 하며.


우리 집엔 유독 나무 과가 잘 된다. 바로크 벤자민 고무나무가 우리 집 대표하여 잘 자라는 효자다.


어느덧 수형도 잡아주지 않고 제멋대로 둔지 2년이 넘어가니 가지가 여기저기 많이 자라나


수형도 엉망이고 균형이 너무 맞지 않아 정리를 해주기로 다짐했다.


식물을 키우며 식물을 배우겠다고 읽었던 어느 서적에선 이런 말을 했다.


가지치기란, 식물이 더욱 잘 자라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더 이상 쓸데없는 가지나 잎들까지 자라느라 귀중한 영양분이 낭비되지 않게


더욱 식물이 필요하는 부분에 영양분을 집중할 수 있게


정리해 주는 과정이 가지치기라고 배웠다.


옛날엔 가지치기라 함은, 괜히 성한 가지를 치고 가지 치면서 나오는 진액이 마치 고통으로 느껴져


식물 학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식집사가 되고 나니 그런 귀중한 뜻이 담긴 돌봄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가지를 치면서 나 또한 내 마음을 들여보게 되었다.


나 또한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다 짊어지느라 정작 정말 소중한 이들을 소홀히 하고 있나.


한정된 나의 소중한 에너지와 사랑을 내게 중요하지 않은 이들에게 쏟느라 나를 소중히 대했던 이들에게


그만큼의 사랑으로 베풀지 않지는 않았는가.


똑.


똑.


나뭇가지가 하나 둘 정리되면서 점차 벤자민 나무의 형태가 잡혀간다.


똑.


똑.


경쾌한 나뭇가지가 잘리는 소리가 무언의 리듬을 만든다.


똑.


똑.


똑.


가지치기를 하니 벤자민 나무는 한층 가볍고 균형감 있는 모습이 되었다.


비정형에서 균형감 있는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다.


비록 가지가 잘렸기에 흰색 진액이 나온다더라도.


벤자민 나무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듯했다.


혹시 나 또한 가지치기로 인해 받을 상처가 두려워 인간관계를 정리하는데 두려워하지 않았나.


나라는 뿌리에서부터 형성된 나의 인간관계의 가지들은 얼마나 뻗어져 나가 있나.


나 또한 나의 관계를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


벤자민 나무를 정리해 준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고 면밀히 걸러내어


내 곁에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이들을 솎아내어


필요 없는 이들을 똑. 똑. 잘라내야겠다.


나의 인간관계 나무가 한층 더 건강하고 잘 자라도록.


벤자민 나무는 그날 햇살을 받으며 자신의 흰색 진액으로 상처를 덮었고


그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정리할 용기를.


똑. 똑. 나도 경쾌하게 정리해 나갈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의 흠집을 사랑해 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