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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Oct 16. 2020

작가엄마의 감성 태교-아직은 낯설기만 한 엄마 이름

​아기를 처음으로 만나며.

어느 날부터 내 몸속에서 또 다른 심장이 함께 뛴다.

나는 그런 네가 너무나 궁금해서 매일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기의 시간은 5주 - 난황, 너는 누구니?


엄마의 뱃속은 우주, 동굴, 바다의 느낌이다.


병원에 가니 반짝반짝 동그랗게 생긴 어여쁜 반지 모양의 링이 하나 보였다. 잘 지어진 아기집 안으로 난황이라는 친구가 생겼다.


저 난황이라는 친구는 정말 중요하다고 하셨다. 찾아보니 난황은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어마어마한 친구로,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해서 구토하거나 잘 먹지 못하면 아기는 말 그대로, 난황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녀석이라고.


난황, 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를 기대할게, 라며 받아 든 의사 선생님의 가정 통신문.


임신 5-6주 차의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다.


1. 임신이 진단되면 일단 부부관계 피하기.

2. 오래 걷거나 오래 서 있으면 위험함. (기준은 30분 이상)

3. 아랫배가 살살 아프거나 콕콕 쑤시거나 당기는 현상이 발생.

4. 약산의 갈색 분비물은 정상이지만 붉은 혈이 비친다면 유산끼로 보고 바로 내원해야 함.

5. 명동 쇼핑, 동대문 쇼핑 등의 하루 종일은 절대 피하여야 함.

6. 임신이 진단되면 먹는 약은 피하여야 함. 단 타이레놀, 엽산, 소화제, 항생제는 무관함.

7. 그동안 술, 커피, 감기약, 방사선 검사 등을 했더라도 지금부터 조심하면 됨.


그리고 이 무렵, 나는 밤마다 허리, 골반 통증과 함께 다리 통증까지 시작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신랑은 밤마다 내 온몸을 마사지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몸의 반응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때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 주가 흘렀을 때였다.

문제의 4번이 나를 덮쳐왔다.




그날 새벽, 너의 첫 심장소리.


새벽 4시 30분.

그날 새벽, 너의 첫 심장소리


임신 소식을 들은 이후, 잦아진 소변 증상으로 늘 새벽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눈 앞에 속옷을 적신 빨간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이전 경험만이 상기되었다. 3개월 전의 끔찍한 기억.


"자기야, 나 피가 나와. 이대로 잠 못 자겠어, 병원에 갈래"


이후 급히 신랑과 대충 채비를 하고 나가려는 찰나, 내 소망과 달리 나는 다시 한번 선명한 빨간 피를 보았다.


도착한 응급실.

응급실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흰색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소리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흰색 티셔츠 사이로 빨간 피가 여기저기 흠뻑 묻어 있었던 이름 모를 이.

그러나 나는 그 청년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았다. 내 주변 세상은 온통 깜깜했고 천장의 하얗게 빛나는 형광등만이 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고, 조용히 맘속으로 기도만 했다. 제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이 그렇게 많은 내가 울지도 않았다. 울면 이전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것만 같아 나는 절대 울지 않았다. 잡은 신랑의 손 하나만을 의지한 채.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어서 진료를 받기만을 바라며 침묵의 아픔을 감내하고 있을 때, 다행히도 산부인과 전문의가 늦은 새벽까지 상주하고 계셨고 그분께 나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음파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자마자 그때까지 꾹 참았던 눈물이 저절로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선생님께서는 아기는 다행히 심장이 잘 뛴다고 하시고, 이런 이벤트가 지나가는 산모들이 의외로 많다며 80프로 정도는 이런 이벤트가 있어도 막달까지 잘 아기를 낳는 산모가 있다고 하셨다. 피가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피고임이 있으므로 쉬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그제야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응급실에서 나오자 이미 아침은 환히 밝아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불안하고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난황과 친구가 되어있는 너를 마주하다.


난황과 친구가 되어있는 너를 마주하다


때마침, 응급실을 들렸던 그날이 예정된 진료일이어서 뜬 눈으로 다시 이른 채비를 하고 병원을 들렸다.

담당 선생님 새벽에 일어났던 일을 말씀드리니 산부인과가 24시간 전문의가 상주하니, 응급실로 가지 말고 이 곳 병원으로 언제든 문제가 있으면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대학병원 응급실의 경우 다양한 상황의 환자들이 오는 경우가 많아, 산모에게 좋지 않은 환경 (혹시 모를 세균 및 바이러스 등) 이 있을 수도 있으니 좋지 않다고 하셨다.


내가 다니는 메디아이 여성병원은 구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이다. 그래서 믿고 선택한 부분이 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30대 중•후반, 따지고 보면 노산이겠다) 일반 산부인과보다는 전문의가 많고 임신, 분만에서 출산, 산후조리원까지 모든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5-6주 차, 내게는 정말로 큰 이벤트가 지나갔다.

질정제를 처방받았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당분간은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한마디,


" 유산은 피가 난다고 유산도, 안 난다고 유산이 아닌 것도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건강한 아이는 무엇을 해도 잘 붙어 있는 답니다."


당시 나는 영어유치원에서 아이들 담임이자 관리자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서 늘 일이 많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당시 처한 상황을 급히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일주일 휴가를 받았고, 나의 처지를 알고 한 주간 다른 선생님이 내 대신 자리를 메꾸어 도와주시기로 했다.



아기를 처음으로 만나며.


나는 문득 엄마로서의 입장보다 내가 상상하는 아기를 생각해본다.

아기에게 엄마의 뱃속은 신비 자체일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만든 집이 바다가 되어 아기는 잠수를 하기도, 엄마의 뱃속이 우주가 되어 여행을 하기도 하는 엄마의 상상.

나는 너의 바다, 너는 항해를 하는 선장.

나는 너의 우주, 너는 귀여운 우주비행사.


이렇게 상상만으로 행복한 엄마.

사실 첫 아이이기에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고 낯설기도 하다.

37년을 '나'라는 독립체로 살아왔는데 임신과 함께 '엄마'라는 이름이 새로 생기며 예비맘, 엄마, 임신, 태교 등의 새로운 이름들이 뒤따른다.

나라도 먹고살자며 급급히 챙기며 바쁘게 달려왔던 인생에서, 앞으로의 생을 함께 걸어갈 동행자가 생기고 그 결실로 아기가 생겼다.

삶을 향해 걸어갈수록 더욱 책임져야 할 생이 더해진다.

'엄마'라는 이름이 그렇다.

내 뱃속에서부터 아이를 잘 품어야만 세상 밖으로 빛을 보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로서 이 시기를 또 잘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결혼을 준비할 때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임신기간에 엄마가 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아기는 아기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가 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아직은 여전히 낯설기만 한 엄마라는 수식어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밤도 아기에게 이야기한다.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특별한 여행길을 함께 걸어가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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