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꽃길 위에서도 자립할 수 있을까?

by 이타카

건너서 아는 마마 중, 아이의 자립을 강조하던 이가 있었다. 어떤가 슬쩍 보니, 그 마마의 보이는 꽃길 위를 걷고 있었다. 그 마마는 자신의 보이에게 `꽃길 위에서 마음껏 자율적으로 걸어보렴`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보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는 자신을 대견해했고, 자립적으로 꽃길위서 걷는 보이를 자랑스러워했다. 마마보이라면 치를 떠는 아내에게 훈수까지 두었다. 그런 모습이 필자를 과거의 한 때로 돌려놓았다.


보이의 마마도 자립이란 말을 즐겨 썼다. 불 끄고 떡 써는 한석봉 마마 스토리는 간간히 등장하는 메뉴였다. 네가 알아서 해야지. 혼자 해야지. 그래야 된다. 하면서 마마가 언제나 꽃길을 깔아주고, 보이가 그 꽃길 위에서만 걷길 바랐다. 보이는 그 꽃길을 걷는 게 자립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꽃길이 현실이 되는 길은 두가지였다. 마마가 왕족이거나, 돈이 마르지 않은 부자거나.


꽃길 위에선 어떤 게 위기이고 중요한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꽃길 위에서의 고통과 어려움은 사실 고통이랄 것도 어려움이랄 것도 없는 투정이었지만 몰랐다. 그 투정은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고, 진실된 고통으로 진화하였다. 그렇기에 옆에서 볼 땐, 저걸 왜 힘들어할까? 해도 본인은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아내는 이런 걸 봐줄 위인이 아니었다.


필자는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마마보이라면 치를 떠는 아내에게 떠밀려 가시밭길을 꽃길로 단장하며 살았다. 건너편 아는 마마의 보이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다. 혹시나 마마보이를 피눈물 없이 교정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스스로 깨우쳐서 대학 졸업도 못하고, 직장도 못 구하면서 집에서 부모 속 썩이는 짓은 그만두자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보이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요즘 한국인은 아이비리그에서 가장 많이 퇴학당하는 비율을 자랑하는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엔, 그러니까 나땐.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한국인이 그리 많이 탈락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땐 과외가 금지였다. 그때 필자는 집에서 마마보이로 컸지만, 학교에 가면 이해할 수 없는 선생틈에서 살아남아야 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교수의 갑질에서도 버텨야 했다. 군대는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비록 마마보이지만 미국대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가는 게 가능했다. 학점이 좋지 않으면 이를 만회할 기회까지 주니,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학점 올리기가 유리하다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내 아이 땐, 코넬 대학교 C 교수가 그리 저주하던 미국 고등학생이 글도 제대로 못 읽게 만든 미국식 교육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미국 처럼 부모의 지능과 재력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개천에선 용이 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거였다.


이걸 알게 된 건, 마마보이를 극히 혐오하는 아내가 아이들 숙제를 챙겨주는 걸 봤을 때였다. 처음엔 아내를 비웃었다. `너도 애 키우니 별수 없지?`. 하지만 숙제내용을 보고 바로 욕이 나왔다. 이건 마마와 파파가 거들어 줘야 하는 거였다. 부모의 지식을 테스트하는 거였고, 부모의 돈지랄 수준을 가늠하는 거였다. 나 때는 없었던 학원비 지출은 월급봉투를 말리기에 충분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마마보이가 안 되는 게 더 힘든 게 아닐까? 공교육이 아이들을 마마보이로 내모는 구조처럼 보여서 그렇다. 스스로 못하는 숙제, 부모가 챙겨줘야 하는 교양. 그렇게 공부해서 아이비리그에 간 애들 절반이(혹은 절반이 넘게) 퇴학당해, 대한민국 학생의 들고온 SAT 같은 입학에 필요한 시험점수가 불신받는 현실. 스스로 학습능력이 없는 마마보이를 걸러낼 시스템이 없는 우리나라 대학교. 덕분에 그런 사실에 무지한 마마와 보이들.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학점 때문에 자살한 학생 이야기가 교정을 들끓고 있을 때였다. 1년에 10명 정도 학생이 자살하는 악명 높은 학교이기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대책은 없는 학교다. `니들 일은 니들이 하는 거고, 우리 학교는 기준치를 못 넘기면 퇴학시킨다.` 라는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미국인 괴짜한테 물었다. 하버드와 예일을 맛보고, 이 학교까지 건너온 이해하기 어려운 친구였다.


`이 학교 학점 따기 어렵니?` `아니.`

`그런데 애들이 일 년에 10명씩 자살하니?` `개들은 스스로 학습을 못하는 애들이지, 부모가 떠먹여 키운 야들야.`

`자살하는 애들 중 외국인은 영어가 익숙지 않아서 일수도 있잖아.` `넌 네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이런 것도 못 헤쳐나가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냐? 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마마보이는 미국에서도 살아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그는 미국 사립고등학교를 나왔다. 공교육이 무너졌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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