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아이중 유난히 인사를 안 하는 아이가 있다. 마마보이로 가는 떡잎이 새파란 아이다. 그 아이는 간혹 필자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낸다. 인사를 싫어했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희미했던 시절이다. 마마가 보이에게 인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건 아니었다. 가끔은 인사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보이는 인사를 못 배운 것처럼 행동했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마마의 속삭임이 언제나 우선이었기에, 보이의 허리가 굽힐 상황이 되면 언제나 마마가 바로 세웠기에.
보이는 대학교에 들어가 카페 알바를 시도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은데, 특별하게 커온 느낌이랄까. 카페 알바는 그 부분에 대한 답을 줄거란 기대가 있었다. 편한 과외대신 카페 알바, 막일 알바를 선택한 친구들이 달라 보여서이기도 했다. 마마는 단박에 천한 일을 하면 안 된다며 말렸다. 천한 일을 하면 천한게 몸에 배서 안된다고 했다. 그냥 너는 뻣뻣이 살아도 되는 일을 할 사람이라고 했다.
보이는 점점. `네가 잘난 게 뭔데 내가 너한테 허리를 굽혀야 해?` `나이 많다고 허리를 굽히는 건 미개한 동네나 하는 짓이다.` 란 생각을 하게 됐다. 밥그릇을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도 현대인이 할 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계 제일 선진국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 다 나와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 이름을 막 부르고, 상사한테도 막 대들어도 무탈하고, 능력만 있으면 안하무인이 충분히 납득되는 게 미국이었다. 그걸 못하는 대한민국은 그 때문에 선진국이 아닌 것이었다. 마마 말대로 공부만 잘하면 인사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설사 공부를 못한다 해도, 인사를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여차 하면 미국으로 가버리지 뭐.
군대에선 힘들었다. 상사한테 까불거나 대들지 않았는데도 힘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방지다`였다. 건방지게 할 의도는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보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잘 보여야지.
그때 납득하지 못한 이유를 `저 건방진 꼬마 놈`이 알려줬다. 필자의 노력은 스스로 가상하다 자평할 수도 있겠지만, 어릴 적부터 허리를 굽혀보지 않았던 습관은 여전히 인사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배꼽인사는 특히나 어색하다. 과거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태어났다는 게, 보이에게 무척이나 불리했다.
영문도 모르고 `저 놈은 좀 건방져`란 꼬리표가 붙은 채로 지냈다. 그런 필자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던 아내는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자마자 배꼽인사부터 가리켰다.
보이는 외국에 나가 일할 찬스를 얻었다. 환호했다. 건방지다는 꼬리표가 절대로 붙지 않을 곳이라 믿었다. 능력만 있으면 되니까. 할리우드 영화가 그랬으니까. 미국이 그러니까. 막상 일해 보니, 별 시답지 않은 일에 고맙다, 감사하다를 연발하는 동네였다. 그렇지 않으면 발붙이기 어려운 동네였다.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외국인 동료들이 볼 때 필자가 별 시답지 않은 일에 고맙다, 감사하다를 하지 않은 인간처럼 보였던 듯싶다. 한동안 차가운 시선에 갇혔다.
별 시답지 않은 일에 고맙다, 감사하다를 배우는 데 2년 넘게 걸렸다. 지금도 어색하지만, 최대한 인사를 하려 노력한다. 어색하지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 본 손해를 메꾸고 싶은 바람은 없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다만 더 이상 인사 때문에 손해 보긴 싫다.
허리가 필자보다 더 빳빳한 한국인 동료를 안다. 좋은 학교 나오고, 누가 봐도 좋은 직장 다니다가 때려치운 후 외국회사에 입사한 동료였다. 7 년 후 그 동료를 다시 만났는데, 승진을 못하고 계속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다. 능력 있고 소신이 뚜렷한 인물이 그러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 이후 2년이 더 지났는데도 그가 승진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아무도 그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만 간혹 들려왔다. 그 동료의 마마는 알고 있을까. 자신의 귀한 보이가 허드레 일만 평생 할 수도 있다는 걸. 바닥에서 일어서기 어렵다는 걸.
그래서 '건방진 꼬마 놈'에게 다가가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아저씨처럼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면, 너 나이 때부터 배꼽인사부터 하는 법을 배워야 해. 시험 삼아 아저씨한테 배꼽인사 해보렴.` 하지만 소용없단 걸 안다. `별 시답지도 않은 나이만 처먹은 인간이, 나이 처먹은 대우받고 싶어, 뻘 소릴 하네`라 생각할 것 같다. 그게 보이의 사고방식이니까. `아직, 어리니 좀 다를까?` 다르다 해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남의 보이에게 그런 요구를 하나. 꼰대짓한다고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그 보이의 마마에게 묻고 싶다. 전문가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좋아 보이는 외양만 바라보지 말고, 인간 세상을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냐고. 단군이래, 우리 민족이 인사에 그리 집착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미국도 유럽도 인사 못하는 인간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아냐고.
국내외 회사 3군데를 다녔고, 다니고 있다. 그간 경험으로 확인한 바, 인간은 허리를 잘 굽혀야 생존이 유리한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