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니노미야 아츠토)를 읽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반백이 넘어서 일까? 조금씩 죽음에 대해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가끔씩 아이들 앞에서 하면 아이들은 기겁을 한다. 두 녀석 다 스물이 넘었으니, 어른이고 청년이지만, 그래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 감정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없는 상황 자체를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럼에도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명 치료하지 말고,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나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혹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생명을 지속시키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평소 엄마 성격대로, 엄마가 말했던 대로 그렇게 해주면 되는 거라고. 그런 상황이 불효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아이들과 남편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을 만났다. 나라면 어떤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어떤 생각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런 의사도 있어야 하고 저런 의사도 있어야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돈이 목적이 되는 의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 두 명의 의사가 있다. 한 사람은 환자를 살릴 가능성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후쿠하라 마사카즈이고 또 한 사람은 병원에서 사신이라 불리는 키리코 슈지다. 키리코는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환자에게 권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말라고 말한다. 병원 입장에선, 환자 가족 입장에선 키리코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불치병에 걸린 환자 입장에서 키리코의 조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술과 고통 그리고 엄청난 병원비를 남길 바에 주어진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인간답게 보내라고 말한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백혈병에 걸려 손을 쓸 수 없는 남자, 의대에 입학했지만 병에 걸린 소녀,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친구이자 앞날이 창창하던 의사. 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질병에 절망하고 두려워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환자와 환자 가족, 의사.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람은 죽음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00)
이루지 못하는 희망을 버릴 때 새로운 희망을 찾아낼 준비가 갖춰지는 거야. (203)
빚을 내서까지 회복할 가망도 없는 인형을 살려 놓는 의미가 과연 있을까? (277)
사실을 알려줘야 해. 환자와 그 가족은 때때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니까. 그럴 때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눈앞에 들이밀어 주는 것도 의사가 할 일이야. (278)
어떻게든 파이팅 하자는 의사(후쿠하라)가 있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의사(키리코)가 있다. 만약 내가 환자라면 어떤 사람이 좋을까? 환자 입장에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사가 더 좋을까?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까? 아직 젊은 편이고 죽음이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냉정한 키리코 의사 스타일이 맞다고 생각되지만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생에, 그리고 삶에 더 욕심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참 어려운 문제다.
주변에 자신의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로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날을 세워 싸우는 집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나이가 그렇다. 위로는 부모를 봉양해야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봉양을 강요할 수 없고, 그걸 바라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요양원이라는 곳은 참 이상하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질기게 삶을 이어가게 만들기 때문에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자식들에게는 고통으로 남는다고 한다. 아직은 내 부모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고 두 분이서 잘 지내고 있지만, 누구도 이런 문제에 자유롭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어떻게 늙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린 어떻게 늙어가야 하고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태어난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는데 죽음도 그럴 수 있다는 게 무섭다. 그래서일까? 나는 죽음만큼은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싶다. 그게 내 자존심 같은 문제 일 것이고.
아직은 남의 이야기 같은 죽음에 대한 고찰. 하지만 꼭 생각하고 메모해야 할 죽음 이후의 문제들. 오늘은 죽음의 문제를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