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의 서(박영 작가)를 읽고
아이들과 논술 수업을 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죽음의 날짜를 받아 놓은 채 이승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 좋을지. 갑자기 죽는 것보다는 서서히 생을 마감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누군가를 슬프게 하지만 또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내 쉴 수도 있을 테니. 어떤 것이든 죽는 자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 모두. 처음에는 아프고 슬프고 난감할 것은 뻔할 테니까.
아주 독특한 소설을 만났다. 읽는 동안 어둡고 습기 차고, 질척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 안에 햇살이 들어와 마냥 기분 나쁘지 않은, 그래서 대 놓고 슬퍼하지 않으면서 슬픈, 이생에 대한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묘한 책을. 아직 죽음이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기에 죽음은 남의 이야기라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끔 책으로 만나는 죽음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이고,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그 모든 순간을 연출할 수 없고, 기약할 수 없으며,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니기에 아직은 생소하지만, 사는 동안 기본 틀은 만들며 살고 싶다. 혹 내가 불시에 어떤 일을 당하게 될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그럼에도 아직은 남의 이야기 같은 죽음.. 죽음 앞에 사람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 정안은 보존과학자다. 부서진 도자기 파편을 봉합하고 초상화의 빛깔을 되찾아 주는 일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이다. 멈춰 있던 유물에 시간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정안은 늘 불안하다. 조만간 자신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니까. 어릴 적 엄마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고 자신 또한 그 유전자의 반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니까. 이런 정안이 어느 날 미라를 보존 처리하게 된다. 미라의 몸에서 각종 장신구를 떼어내고 작업을 마친 뒤 미라 특별전에 내 보낸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치솟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공무원이다. 여자는 자신의 생에 의지가 가득한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죽음을 맞는 일에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의붓아버지의 암묵적 폭력과 책임감 없는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여자는 삶이 늘 잿빛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도태되지 않으려는 그녀의 강박 같은 신념 때문이다. 우연히 박물관에서 미라 특별전을 보게 된 여자는 이제껏 지켜왔던 자신의 원칙들이 무너짐을 느끼고 정안은 그런 여자를 보며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되는데...
자신의 죽음을 알려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지, 다행스럽게도 이 세상에 자신의 죽음을 아쉬워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런 걱정 없이 고요히 자신에게 다가올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71)
두 사람 다 이 세상의 평범한 주류는 아닐 수 있다. 일찍 죽은 엄마의 유전자가 자신에게도 반이 있다고 느끼는 남자에게 아빠가 충분한 사랑을 줬다면 이렇게 외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라는 것. 부모가 있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때문에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았던 정안의 아픔에서, 슬픔을 느꼈다. 혼술이니 혼밥이니 혼자가 편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이유는 함께 하는 즐거움이 뭔지 알기 위함일까?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 하지만 혼자일 수는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안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 아닐까
누군가의 성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좌절을 딛고 가능했던 것이고, 누군가의 사랑은 누군가의 소외를 묵인한 채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누군가가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면 그는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156)
내 행복에 취해 다른 이들의 아픔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일 수 있겠지. 하지만 점점 주변을 돌아보는 내가 되고 싶어 진다. 적어도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