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박지리 작가)를 읽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한다. 삶의 주인공으로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슬픔이나 좌절이 다가왔을 때 이건 그냥 연극일 뿐이야. 조만간 이 연극을 끝나고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의 연극은 재상영이란 없는 것 같다. 그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실수가 연발되는 연극이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 연극을 누가 봐주던 봐주지 않던. 내 인생의 연극은 이제 중반부로 달려가고 있다. 인생이라는 연극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나는 그래서 고민하게 된다. 이 연극의 줄거리가 제대로 흘러가는지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삶의 연극은 답이 없다. 내 방식대로 찾아가야 하는 스스로의 답만 필요할 뿐.
편의상 M으로 불리는 남자가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면접장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불안하다. 장소가 맞는지 시간이 맞는지... 그리고 자신의 첫 번째 면접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인 ‘대입 면접’의 기억이 떠오른다. 충분히 면접을 잘 보았고, 그래서 합격을 확신했지만 M은 그 대학에 떨어졌다. 2순위로 들어간 대학에서 M은 방황했고, 왜 면접에서 떨어졌는지 이유를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후 다양한 면접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과자 회사 같은 곳에 지원해 면접을 보게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M. 이곳 면접에서 도둑과 살인자 중 누구를 합격시킬 것인가를 물었는데 M은 혼자서 살인자를 선택했고, 이것을 계기로 합격하게 된다. 회사 연수를 받기 시작한 M. 아침은 식당에서 자율적으로 만들고, 사흘에 한 번 집짓기 봉사를 하는 회사의 연수 활동. 이곳에서 M은 우연히 ‘신입사원 연수 자료’를 보게 된다. 13번 번호 옆에 엑스 표시를 본 M은 그게 혹 자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화롭게 직원 연수 활동을 끝내려 했지만 이걸 본 후 M은 달라진다. 여기서도 떨어지는 사람이 발생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후 M은 합격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을 시작하는데.... 과연 13번은 누구이고, M은 행동을 잘한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묘한 슬픔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누군가의 진의를 안다는 것, 그리고 살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고 피곤한 일인지, 그 진의가 맞다면 상관없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이게 과연 책에서만 국한된 것일까?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상사를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우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충성하고, 그러다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고 나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M은 우리의 아들, 딸 같다. 그들도 면접을 보기 위해, 면접에 합격하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수의 눈치를 보며 그 사람 마음에 들도록 얼마나 노력하는지... 연극이라면 차라리 좋겠지만, 우리 인생의 연극은 우리가 주인공이기에 중간에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고난이나 아픔 앞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어디 한 두 번일까?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고 이렇게 견디고 있다. 대단한 그 무엇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굴곡 없이 잘 살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M에게도 누군가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나치게 상대를 확대 해석하거나, 소심하게 도망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또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살 것이다. 후회를 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또 열심히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박지리 작가.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가 남긴 책.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그녀가 맡았던 배역은 무엇이고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독자로 그녀의 소설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걸 몹시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녀가 알았을까? 이번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독자를 찾아와 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