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번외(박지리 작가)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내가 기억하는 무서운 사건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다.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구조 과정을 내보냈고,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었다. 이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세월호 사건이겠지. 모두가 살아 돌아오기를 얼마나 빌고 또 빌었는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우리는 그 무서운 상황 속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에게 다행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3자의 입장. 모두가 죽은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면, 그게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기만 한 일일까?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소년은 참사 1주기 추도식 다음 날 학교를 벗어나 돌아다닌다.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후 사람들은 소년을 예외 취급한다. 그들 입장에선 배려일 수 있지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지만 소년의 교복을 보고 참사에 대해, 추도식에 대해 말한다. 소년은 이들이 보이는 관심이 버겁고,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느낀다. 또한 사건의 가해자 k와 공범 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소년은 언제까지 혼자 살아남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살아가는 것. 어찌 보면 나는 살아있어 살고 있는지 모른다. 삶이 버겁고 여전히 무섭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우울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기도 한다. 때론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살고 있지만, 그게 편한 때도 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고민이 고민을 낳기도 하니까. 아직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유일한 생존자가 된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살아갈까?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마냥 기쁘기만 했을까? 나는 소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친구들의 삶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 당사자는 삶 자체가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작은 녀석이 삶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농담처럼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힘들면 어쩌누.. 그래도 힘내서 파이팅하는 건 어때?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아이의 그 마음을 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삶. 그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이겨나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압박인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며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 그래서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이 소설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년의 삶과 작가의 삶을 생각해 봤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남은 소년. 별책부록 같은, 번외와 같은 삶. 나는 아직도 삶이 어떤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생각하고 고민한다. 다만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그게 어떤 삶인지는 결국 내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지만. 삶이 꽃길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꽃길보다는 험난한 길이 더 많다. 꽃길이라 생각하는 건 순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그 삶이 비록 번외일지라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악의 기원이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