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된 지 약 2개월, 그간 꾸준히 나의 이야기를 쓴다라는 목표로 부담 없이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어떤 키워드로 설명되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도 되었다. 브런치는 나의 삶에 육아가 함께하기 시작한 그 내용과 생활을 담고 있다. 어쩌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가구 형태 중 하나로 있을 법한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브런치로 글을 남기고 기록하기로 결정한 일은 참 잘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의 세상 속에 살면서 비단 정보를 놓치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삶이나 스스로의 나도 많이 놓치며 살아온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고, 더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제안 메일은 5월 21일, 어떤 제안일지 궁금했다. 어떤 스타일의 제안이 들어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메일 제목을 클릭하는 그 순간 무척 떨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주식회사 우디고의 대표님의 메일이었고, 새로운 서비스를 앞두고 인터뷰를 요청해 온 것이다.
"저희는 가족의 안전과 연결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실제 부모님들의 고충과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고등학교나 중학교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의 소중한 의견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내가 올리는 글이 가족, 육아, 양육에 대한 글이니 이 서비스의 페르소나(persona)가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고등학교나 중학교 자녀를 둔 부모님의 의견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곧 나도 중, 고등학생이 될 아들의 엄마가 될 것이고 어떠한 서비스가 출시되고 상용화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때쯤이면 우리 아들이 직접적인 사용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샌드타임'이라는 서비스로 가능한 미팅일정을 체크하도록 메일이 왔기 때문에, 부담 없이 원하는 일정을 체크할 수 있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그 시간으로.
한 차례의 일정조율을 통해, 온라인 구글 밋에서 마주했다. 연락을 준 대표님과 나. 나는 카메라는 비활성화해 두고 목소리로 온라인 인터뷰에 응했다. 우선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들었고, 나의 글에서 가정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가정, 가족의 키워드로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특히 인터뷰 질문에서는 '안전'에 대한 부분을 많이 언급되었다. 사실 코로나 시기에 또는 그 이전에 온라인 세상에서 가족 간의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여러 서비스가 나오고 있고 시도가 되었던 것으로 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한 키워드임엔 분명하다. 다만 새롭게 추가된 키워드는 '안전'이었고, 아이의 안전을 위해 우리 가족 그리고 나는 어떤 노력과 염두를 하고 있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다섯 살 아이의 시기는 24시간 항상 어른과 함께하는 시기이기에 어느 정도는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어른은 부모였다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가 태권도 사부님이었다가 때로는 이모 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항시 안전을 보장해 줄 어른이 있었고,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으므로 걱정할 것은 없었다. 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등하원을 하거나 스스로의 시간을 보낼 때에는 어떨지 상상해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나는 사실 이런 타입의 걱정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내가 상상하는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이러하다. '아이가 예측불가능한 일로 위험에 빠졌을 때, 연락이 닿거나 도움받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해결될 문제를 스스로 고군분투하다가 일이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되는 것' 물론, 이런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재치를 발휘해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약 1시간 15분 정도 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터뷰 요청한 대표님도 어떠한 인사이트를 얻은 것 같았고, 나 또한 '내가 아이 육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은 포인트들 몇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인터뷰 중 사용했던 어휘 중에서는 '원격 육아'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거나 타인에게 맡겨두고 엄마인 나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이런 상황이 많아지겠지 싶다. 아이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아이가 성장함에 있어 필요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엄마로서 촉각을 세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잘 챙길 수 있는 그런 관계이고 싶다. 아이가 언제쯤 엄마, 아빠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할지는 모르지만, 벌써 아이는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하고,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다. 그러니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안전'을 논하다가 존중과 이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이가 내 눈앞에 없어도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양분을 마련해 준다면, 아이가 스스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위험한 부분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안전지대'를 항상 만들어줄 마음은 없다. 온실 속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위험한 것으로부터 잘 대응하고 조금은 덜 위험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