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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영쓴이 Jan 30. 2021

그럴듯한 이유가 없어도 되는 이유

아이의 책, 엄마의 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님의 엉뚱 발랄한 이유 이야기 [이유가 있어요]를 아이와 함께 읽었다.

표지부터 재밌다.
주인공 아이가 코를 파고 있는 장면.

  아이는 킥킥거리며 이 책을 읽고는 본깨적 노트에다가 이렇게 요약했다.



본 것 : 이 책은 주인공 친구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면서 자꾸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찰떡같이 요약해내서 내심 놀랬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을 (예의 등의 이유로) 습관, 버릇과 행동에 대해 어려서부터 수없이 교정받고 있다. 
“안돼! 하지 마”라고 얼음땡처럼 외치는 어른들의 즉각적인 제재로 말이다. 

 사실은 별 거 아닌 행동들이다. 
코를 후빈다던가, 다리를 떤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다던가, 복도를 뛰어다닌다던가 하는 것들. 나도 어렸을 때 손톱 물어뜯는 버릇으로 무진장 혼났던 경험이 있다. 아이 또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복도를 뛰어다니는 걸로 반성문을 수십 장 써냈던 터라 주인공 친구가 무척 공감이 갔을 테다. 





나는 코를 파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맨날 혼나요.
“지저분하잖아!” 하고요.

나도 이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면
코를 파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유가 있어요- 본문 6쪽


 책 속의 주인공은 어른들의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듯한 이유.
그래서 만든 이유들이 참 깜찍하고 유쾌하다.

코를 파는 것은 콧속의 신바람 빔을 쏘는 것이고, 다리를 떠는 것은 두더지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묻는 것, 그리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것은 머리에 집게벌레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을 보고는 우리 아이도 노트에다가 신나게 자신의 이유를 써 내려갔다.


이유가 있어요 독서노트 by jjun


그야말로 아이의 시선에서 쓴 사랑스러운 상상과 이유들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또 책 속에서 주인공 친구와 그럴듯한 이유에 대해 문답하는 엄마의 위트 있는 모습은, 늘 아이를 윽박지르기만 하던 책 밖의 엄마인 내 모습과는 참 달랐다. 이유를 물어봐주지 않았던 어른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요.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해버리는 일 없어요?



 책장을 넘기는 내내 유쾌하게 펼쳐지던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이유 만들기는 책 말미에서 엄마의 행동에 대한 이유 만들기로 바통이 넘겨진다. 
이 물음을 통해 작가가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 듯하다. 

 주인공인 아이가 엄마에게 한, 어른들도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해버리는 일은 없냐는 물음이 내 마음에 던져졌다.  ‘이유가 있어요?’라는 물음은 역설적으로 이유가 꼭 필요하냐고 하는 물음 같다. 
아이들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이유가 꼭 있어야 하냐고.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해버리고 마는 행동에 대해, 한걸음 뒤에서 지켜봐 줄 수는 없었는지 묻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려고 했다. 

이유가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나보고 물건 잘 챙겨두라고 하면서 매번 엄마 휴대폰은 어딨는지 물어보잖아.

그건 왜 그러는 거야? 이유가 있어?" 


"음..... 그건 말이야. 엄마 머릿속에 휴대폰에 대한 기억저장 회로가 고장 나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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