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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Jan 07. 2025

프롤로그




호달은 좁고 경사진 언덕을 터덜터덜 오르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기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할 만큼 길이 가파르다. 붉은 벽돌의 낡은 빌라 몇 개를 지나 언덕 중턱의 구멍가게에 이르러 잠깐 숨을 고른다.

때가 잔뜩 껴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뽑기 기계 앞에 발로 밟아 부서트린 플라스틱 껍질이 흩어져 있다.

장판을 댄 평상 위에는 조각조각 잘라 널어놓은 애호박이 초여름 햇볕에 시들시들 말라가고 몸통이 굵은 파리 두어 마리가 그 주변을 요란하게 오가고 있다. 그는 평상 한쪽에 잠깐 앉아 쉴까하다 고개를 젓는다. 앉아있어 봐야 마음만 복잡할 테니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것 같다.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과 원룸들을 지나쳐 언덕 끄트머리에 이르자 호달이 사는 고시원 건물의 회색 귀퉁이가 나타났다. 서서히 걸음을 늦추다 이내 우뚝 서서 그곳을 바라봤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듯 막막하고 하염없는 표정이었다.      

길 쪽으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발톱으로 열심히 긁던 삼색 고양이가 발을 내리고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지루하다는 듯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곤 건물 뒤편으로 한가로이 사라졌다.  

   

‘좋겠다. 갈 데도 있고.’  

    

호달은 그 순간만큼은 고양이가 정말로 부러웠다.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걸어왔지만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제 고시원에는 그의 방이 없다.

쓰레기통 옆에 나란히 쌓아둔 비닐봉지 중 하나에는 그의 짐 보따리도 섞여 있을 터였다.

오늘 새벽에 마주친 총무가 내다 놓겠다고 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인정머리 없는 총무에게 그런 식으로 쫓겨난 사람이 이미 여럿이었다. 특히 호달처럼 묶어둔 보증금 없이 들어온 경우엔 월세가 한 달만 밀려도 가차 없었다.  

    

총무는 고시원 복도를 오가며 방 손잡이를 불쑥 당겨보는 습관이 있었다. 말로는 고독사 방지 차원의 점검이라지만 월세가 안 들어온 방만 겨냥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몇 개월 전 옆 고시원에 경찰차와 소방대원 몇이 출동한 일이 있었다. 십여 분 만에 조용히 마무리되긴 했으나 누군가 그들의 무전 내용을 들었다며 소문을 퍼트렸다. 창문도 없는 방에서 실내 흡연으로 늘상 민원을 일으키던 외국인이라거나, 업소에 나가는 걸로 추정되는 꼭대기층 여자라거나, 십 년째 고시 공부를 하다 중늙은이가 되었다는 남자라거라 주인공은 매번 바뀌었지만 고독사 사건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듯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총무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거구에비해 발끝이 가벼운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월세를 건너뛴 날부터 호달은 방 안에 있는 동안 문을 꼭 잠갔고, 코 고는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 봐 잠도 깊게 자지 못했다. 사무실 바로 옆 공동 주방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밥과 김치도 그림의 떡이 되었다.

     

-지방에 내려와 있어서 은행 업무가 불가합니다. 올라가 정산하겠습니다.  

   

입금 독촉 전화에 말도 안 되는 문자로 답한 후 며칠 간은 미리 사다 놓은 컵라면과 생수로 방안에서 버텼다. 그러나 화장실이 문제였다. 다행히 화장실은 사무실에서 먼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었고 그는 총무가 자러 간 시간을 틈타 은밀히 용변을 해결했다. 거기까지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두 번 성공 후엔 저도 모르게 대담해지고 말았다. 마침 컵라면도 떨어져 배가 고팠다.

호달은 이삿짐센터 알바 때문에 몇 번 연락을 주고 받았던 김아저씨에게 슬쩍 총무의 행방을 물었다. 늦은 시간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금방 답이 왔다.

-사무실에 없던데? 자러 간 모양이야.     


역시 죽으란 법은 없지, 하며 호달이 주방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살아 있었네? 난 또 문이라도 따야 되나 했지.”

자러 간 줄 알았던 총무가 주방 간이 의자에 떡하니 팔짱을 끼고 앉아 씨익 웃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지방 갔다가 일이 좀 늦어져서……”

태연하게 받아넘기려 했지만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뚝뚝 끊겼다.

“왜, 밥 먹게? 이 시간에?”

“아…예, 차를 오래 탔더니 목이 좀 말라서요.”

칸이 나뉜 빈 반찬통에 애먼 정수기 물을 받는 동안 호달의 뒷덜미가 뜨끔거렸다.

“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지. 오늘 정오까지 월세 입금 안 되면 짐 뺀다. 방문 열어놔.”


결국 그렇게 되었다. 호달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배나 채우고 보자는 심산으로 전기밥통에 남아 있던 밥을 싹싹 긁어 물이 담긴 반찬통에 말았다. 냉장고 안에 호수별로 빼곡히 들어찬 반찬도 죄다 꺼내 먹어 치웠다. 목구멍까지 음식을 꽉꽉 눌러 채우고는 희부옇게 동이 터오는 아침에 고시원을 나섰다. 차마 짐보따리와 함께 길바닥에 내쳐지는 일을 겪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찬은 먹지 말걸.”     

완고하게 몸을 틀고 앉은 건물의 입구를 바라보며 호달은 자신이 먹어 치운 반찬의 주인들을 떠올렸다. 그중 몇은 은밀히 좁은 방 한구석을 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총무뿐 아니라 그들에게까지 미운털이 박혀 손톱 만 한 아량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움푹 패인 아스팔트 사이로 삐죽 솟은 풀을 한쪽 발로 짓이겨가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궁리해 봤지만 머릿속엔 빈방처럼 휑한 바람만 지났다. 휴대폰을 꺼내 통장에 들어온 돈이 있는지 확인했다.

언덕을 오르기 직전에도, 지하철역에 내려서도 이미 확인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기대를 걸어 본다. 역시나 잔고는 단돈 천육백칠십 원뿐이다. 현금인출기로 인출 할 수도 없는 단위의 돈이다.


피시방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루한 신호가 이어질 뿐 응답이 없다. 다시 한번 건다. 신호가 가기 무섭게 끊긴다. 다음은 걸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어차피 밀린 알바비 받기는 글렀으니 그 돈만큼 피시방에서 먹고 자며 버팅길까 생각해 본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조폭 출신이라는 매니저의 압박을 이겨낼 깡다구가 있다면 말이다.

‘진짜 해? 말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경사진 길을 도로 내려가는 호달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느라 뒤에서 오토바이가 빠르게 돌진해 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빽 빼애액~!


등 뒤에서 발악하듯 울부짖는 경적 소리에 놀란 호달이 어어, 하며 주춤거리는 순간 누군가 그의 한쪽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호달은 공중에 팔을 휘젓다 중심을 잃고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오토바이가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또다시 길게 경적을 울렸다. 눈앞이 어찔했다. 그때였다.


“이봐, 죽으려고 작정했어!”


성난 목소리로 바락 내지르는 고함에 호달은 머리통을 감싼 손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몇 발짝 옆에 주저앉은 자세로 바닥을 짚고 있는 남자가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넘어지는 호달의 팔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은 모양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호달은 저만치 떨어진 휴대폰을 먼저 챙겼다. 다행히 액정은 무사했다.

“죄…죄송, 아니 감사합니다.”

그제야 호달은 감사도 사과도 아닌 말을 우물거리며 일어섰다. 팔꿈치가 욱신거렸다.

남자도 손을 털며 따라 일어섰다. 폼새로 보아 딱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왠지 미안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남자가 재빨리 호달을 막아서며 말했다.

“어쭈, 그냥 가게?”

“네?”

“내 사진 찍었잖아, 지하철에서. 어딜 그냥 내빼려고.”

‘사진, 사진…사진?’

흐릿한 눈으로 어딘가 남자의 말을 천천히 곱씹던 호달은 마침내 번뜩 지하철 안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아! 그 2호선 빌런’

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맞은편 의자에 앉아 종이를 들고 있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러자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난데없는 체기가 올랐다. 왜 나쁜 일은 한 번에 일어나는 걸까.

그것도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본 작품은 작가멤버십(유료구독제)용 파일럿으로 1~2화 미리보기 후 3화부터 유료로 전환됩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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