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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Dec 11. 2023

안부를 전하는 밤






며칠 전은 몹시 무더웠다. 폭우가 쏟아진다던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은 하루 종일 어둡게 내려앉은 채 요지부동이었고 높은 기온에 바람조차 없어 갑갑했다. 반곱슬인 머리는 습기를 머금자 푸슬푸슬 제멋대로 일어나 말을 듣지 않았고 마스크 안은 안 대로 눅눅해 숨쉬기가 거추장스러웠다. 젖은 솜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축 처진 채 퇴근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전에 소설창작 강의를 잠깐 같이 들었던 사람의 등단 소식을 들었다. 와~하며 축하를 보냈지만 머리 위의 먹구름이 더 무겁게 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맥주라도 한 캔 살까하다 그냥 지나쳤다. 그런 날은 무슨 수를 써도 기운이 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집에 돌아와서 서둘러 에어컨을 틀고 샤워를 한 후 바로 침대에 엎어져 휴대폰을 들었다. 인스타 피드를 확인하고 뉴스를 훑어본 후 유튜브를 이리저리 타고 돌아다니는데 전화가 왔다. 언니였다. 언니? 전화 받기가 좀 망설여져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멍하니 들여다보다 연결을 눌렀다.

“내 동생 잘 있었어?”

전화기 너머 언니의 목소리는 아주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지만 다정했고, 조금은 나처럼 기운이 없는 듯도 했다. 평소 자주 통화하는 사이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있지 그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우리 동생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했지.”

그리고는 사소한 안부가 짧게 오갔다. 이천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언니는 혼자서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을 가르치고 차량까지 운행하며 바쁘게 사는 중이다. 학년 별로 시간을 나누어 가르치다 보니 밥 먹을 시간도 모자라 아이들을 다 보낸 후 싱크대 앞에 선 채로 허겁지겁 밥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이제 막 아이들을 다 돌려보냈는데 문득 내가 떠올랐다고 말하는 언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농을 던졌다.

“바쁘신 언니가 전화를 주다니 정말 영광이네, 히히.”

그러자 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더욱 과장된 말투로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영광이라니, 내가 더 영광이지. 우리 훌륭한 동생. 글도 잘 쓰고 마음도 착하고 씩씩한 내 동생이 전화를 받아주다니.”

어? 그런데 장난으로 주고받던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내 참았던 말을 불쑥 꺼냈다.

“휼륭하긴. 이 나이에 이러고 있는데. 한심하지 뭐.”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해보긴 처음이었다. 더욱이 언니에게는.

언젠가부터 가족 내에서 나는 감정 표현이 드물고 도움받기 싫어하는 고집 센 캐릭터였다. 반면 언니는 똑 부러지게 자기 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여려 뜻밖의 일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사실 뜻밖이라는 건 내입장에서 였다. 개인주의자에 오지랖력이 제로에 가까운 나는 자주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렇다고 으르렁대며 싸우는 편도 아니어서 우리는 자라며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특히 나의 독립 이후 그 일을 엄마보다 더 마음 아파하는 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번 명절에 본가에서 언니를 만났을 때였다. 언니는 물컵 쥔 내 손을 무심코 바라보다 못 보던 흉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물긴 했지만 붉게 튀어나온 흉이 제법 아파보였던 것 같다. 나는 이삿짐 정리하다 조금 다쳤다고 설명하며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였다. 이제는 말짱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언니는 내가 손을 쓸 때마다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슬쩍슬쩍 흉터를 바라보았다. 나는 모른척했다. 언니에게 다쳤던 순간과 혼자 구급차까지 타고 가서 치료받은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언니도 더는 묻지 않았다. 서로 뒤엉켜 놀던 어릴 때와 달리 어느새 언니와 나는 서로를 조심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언니와 한밤중의 통화라니……. 게다가 나도 모르게 풀죽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낯설고도 신기했다. 나는 내친김에 한 마디를 보탰다.

“답도 없이 이러고 있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

“암, 잘하고 있는 거 맞지. 그 나이에 너처럼 용감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하고 싶은 일 찾아 열심히 하는 거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답답한 건 나지.”

“왜, 언니야말로 애 잘 키우고 돈 잘 벌고 세상 최고 훌륭한데. 누가 우리 언니한테 뭐라 그래, 다 나오라고 해!”

“역시 내 동생. 내 동생한테도 뭐라 그래봐. 쫓아가서 머리를 뜯어놔 버리지.”

“그치?”

“그럼 그럼.”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맞장구를 치다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고나니 우울한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언니, 밥은 먹었어?”

“얼른 먹어. 피곤하면 맥주도 한 잔 하고.”

“그래, 너도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일찍 자.” 

“응.”

열기를 띠던 우리의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언니 말대로 나는 그대로 불을 끄고 누웠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은 무엇이든 다시 해볼 기운이 생기리라 기대하면서. 


언니는 어떻게 알고 내게 안부 전화를 했을까. 어쩌면 언니에게도 유독 힘든 일이 많은 날이었는지 모른다. 남편이나 아이들보다는 멀고 친구보다는 가까운, 철 들기 전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들까지 스스럼없이 공유하던 자매와 그 옛날처럼 투닥투닥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니 우린 영락없는 자매다.     

어느덧 현관문 너머의 고요한 어둠과 혼자 잠드는 밤이 익숙해진 나에게 언니의 안부 전화는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아니 오히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믿고 있지만 언니 덕분에 가끔은 이렇게 안부를 전하는 밤이 기다려질 것도 같다.


* 매거진에 연재했던 글은 책 <나의 경우엔 이혼이라기보다 독립> 으로 출판하였기에 일부만 남기고 발행 취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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