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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Apr 10. 2024

마성의 막내





카톡방에서 여동생이 가족을 호출했다. 야식집 할 가게를 계약했으니 와서 청소와 오픈 준비를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경기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식구들이 재빨리 응답했다. 명절이 아닌 때에 이처럼 온 가족을 불러 모을 수 있는건 여동생뿐이다. 이런 게 바로 막내의 위엄이라는 걸까. 나이로 따지면 남동생이 제일 어리지만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손의 무게를 짊어져 왔으므로 우리 집의 실질적인 막내는 여동생인 셈이다. 돌보거나 책임질 손아래 없이 성장기를 거친 덕인지 여동생의 자유분방함과 거침없음에는 타고난 자연스러움이 있고 신기하게도 그게 매번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하곤 한다.


동생은 이혼해 두 아이와 함께 살 집을 장만하자마자 연이어 작은 가게를 계약했다. 퇴근 후 밤에만 운영하는 야식집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루 다섯 시간 근무에도 허덕이는 나로선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만 동생은 다른 동네에서 이미 일 년간 시범 운영까지 마친 상태였다. 마포구청역에서 오 분 남짓 걸어 가게에 도착하니 인테리어 기사인 동생 친구가 먼저 불려 와 몸빼바지 차림으로 작업 중이었다.  나도 곧바로 목장갑과 고무장갑, 수세미를 받아 들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서 어쩔 수 없어, 도와줘야지.”

마치 맡겨둔 물건 찾듯 당당하게 노동을 요구하는 동생의 천연덕스러움에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이 났다. 그나마 까칠한 캐릭터인 나였기에 그만한 변명이라도 들은 것이지 속속 도착한 다른 식구들은 제대로 못 한다고 핀잔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라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얄밉지 않으니 이건 정말 막내의 마력이라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식구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마 중학생 때였나 일주일 치 용돈을 받자마자 냉큼 써버린 뒤 치킨이 먹고 싶었던 동생은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를 노려 뒤를 쫓았다. 그리곤 문 앞을 턱 가로막고 섰다.

“만 원만 꿔 줘.”

무방비로 볼일을 보던 엄마는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뭐래, 이 가시나가. 얼른 비켜!”

하지만 몸무게로나 키로나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안 꿔 주면 못 나간다고 막는 딸과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엎치락뒤치락 몸싸움하다 엄마는 기어코 만 원을 뺏기고 말았다. 강짜도 그런 강짜가 없다. 그런데도 엄만 처음엔 성질이 나더니 나중엔 기가 차서 웃음이 나더라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우습다며 깔깔댔다. 팔을 걷어붙이고 벽과 창틀을 닦으며 우리도 맞아맞아, 쟤 진짜 막무가내야 하며 따라 웃었다.


동생에게는 그런 에피소드가 숱하게 많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땐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단골 중국집에 가선 청소해 줄 테니 짜장면 한 그릇을 달라고 했단다. 학교도 안 들어간 꼬마가 제 키 만한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에 홀랑 넘어간 사장님은 짜장면 한 그릇에 더 해 용돈까지 쥐여주었다. 그 후로 동생은 그 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면 꼭 백 원씩 용돈을 받아 왔다. 짜장면 한 그릇에 육백 원이던 시절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한 팔에 깁스를 한 동생이 남은 한 손으로 고기에 쌈까지 싸 먹는 걸 보고 셋째는 산꼭대기에 올려놔도 먹고 살겠다고 하셨다니 막무가내를 넘어선 그 배짱과 용기는 역사가 꽤나 깊다.

그러고 보면 동생은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나와는 참 많이 다르다. 내가 이혼으로 규모가 줄어든 경제 상황에 맞춰 삶을 간소화시키는 동안 동생은 집을 마련하고 가게를 열며 생산성을 높이는 쪽을 택했다. 동생이 특별히 돈이 많아서는 아니다. 그보다 자기가 가진 물적, 인적 자원을 최대치로 활용할 만한 역사 깊은 능력 덕분일 것이다.     


엄마, 아빠, 언니와 형부, 나, 남동생 부부까지 온 식구가 달려들어 이전 가게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 거한 저녁을 먹을 때였다. 다음날인 일요일 글쓰기 모임이 있던 내가 먼저 가보겠다고 하자 동생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야. 청소 끝났으니까 내일 페인트칠 해야지.”

“안돼. 중요한 일정이야.”

“언니, 생각해 봐. 이렇게 일을 다 벌여놓고 그럼 어떡할 거야. 언니가 해야지. 못 간다고 전화하고 마무리하고 가. 내가 내일 어엄청 맛있는 해장국 사주고 집에까지 딱 모셔다줄게, 응응?”

평소엔 야, 라고 부르면서 이럴 때만 언니다. 그럼에도 동생의 무대뽀 공격에 나 역시 그 옛날 화장실에 갇힌 엄마처럼, 중국집 사장님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 열과 성을 다해 페인트 칠을 하고 사업대박을 기원하며 입구에 고급 체리목으로 만든 액막이 북어까지 고이 걸어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동생은 약속한 대로 맛있는 밥도 사주고 극진한 정성으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런 막내 같으니라고! 나는 투덜대면서도 속으로는 나보다 몸과 마음이 더 녹초가 됐을 동생이 안쓰럽고 기특했고, 무궁무진한 삶의 에너지가 존경스러웠다. 이제 낯선 동네 한 켠에 작은 점처럼, 혹은 별처럼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을 동생, 우리 막내는 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헉! 그러려면 식구들의 노동력이 자주 필요하려나. 그러자 발끝부터 슬금슬금 밀려드는 근육통과 함께 불안한 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아오~이런 막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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