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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란 Apr 03. 2024

그녀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까닭




윤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단 하나뿐이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무렵, 여동생과 또래인 남자 조카와 무엇인가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던 방안에서였다. 아이들 싸움이 으레 그렇듯 조심성 없이 장알대며 이리저리 뒹구는 와중에 빠드득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저것들 다 잡아먹고 갈 테다.”

윤은 조금 놀라 아랫목을 돌아봤다. 깊은 병에 걸려 누워 있던 아버지가 덮고 있던 이불을 물어뜯으며 무섭게 그녀를 노려보다 눈을 감았다. 윤은 아마도 그것이 아버지가 임종하던 순간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무섭지는 않았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이였으므로. 오히려 아버지의 장례식 때는 신이 나서 “우리 아빠 죽었다!” 하고 자랑하며 다녔다고 한다. 제사상에 놓인 때깔 고운 사탕을 입에 물고서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좀 덜떨어졌나 봐.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야 겨우 철이 드는 걸 보면.”

요즘 들어 나의 엄마 윤이 하는 말이다.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그, 그러게 진작 철 들었으면 딸들이 고생을 안 했을 건데” 하며 쯧쯧 혀를 찬다. 우리 사이에 위로 따윈 없다. 하지만 깊은 원망도 없다. 그저 그렇게 남 얘기하듯 이런저런 과거를 흘려보낸다.  

   

윤은 공부는 죽어라 싫어하고 노래만 좋아하는 소녀였다. 홀로 된 어머니가 살림과 생계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가방 챙겨 학교에 보내면 중간만큼 가다 몰래 되돌아왔다. 그리곤 뒤주에서 훔친 쌀과 바꾼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적한 논두렁에 앉아 노래를 부르곤 했다. 너무 자주 그러는 바람에 수업 일수가 모자라게 되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윤이 중학교 좀 보내주세요.” 하고 담임 선생님께 무척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은 천하태평이었고 마을에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면 득달같이 뛰어가 참여 신청서를 썼다. 대개는 고등학생이던 둘째 오빠에게 들켜 실컷 두들겨 맞는 걸로 끝을 맺었다.


그녀에게는 오빠가 두 명 있었다. 머리 좋은 큰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어 자주 볼 수 없었고, 둘째 오빠가 아버지를 대신해 윤을 엄하게 단속했다. 오빠는 학교에 빠지고, 노래자랑에 나갈 때는 물론이고 제 친구가 윤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윤을 때렸다. “아오, 작은 오빠새끼 하여간 성격이 불같았다니까.” 그런 말을 할 때면 엄마는 그 시절 어린 윤처럼 인상을 쓴다. 나는 또 쯧쯧거리며 “그러니까 말 좀 잘 듣지.” 하다가 한편으론 와락 화가 나서 “왜 남의 엄마를 패고 그래, 진짜 별꼴이야.” 하며 역성을 든다.

 

공부가 너무나 싫었던 윤의 유년 시절은 중학교 졸업과 함께 끝이 다. 윤은 고향인 남원을 떠나 큰오빠의 신혼집에 얹혀살며 공장에 다녔다. 올케에게 도둑 누명을 쓰고 야멸찬 소리도 들어도 조카들이 예뻐 속상한 줄도 몰랐다. 온화한 큰오빠가 아버지처럼 암으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 무렵 작은 오빠도 서울의 큰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윤은 전답을 팔아 작은 오빠에게 모두 주고 서울로 온 홀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다 결혼했다.

가난하지만 쾌활하고 다정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남편에 대한 그녀의 회고가 끝내준다. “난 네 아빠를 엄마처럼 여겼어. 자다가도 엄마, 하고 파고들고 그랬거든.” 신혼시절 아빠는 엄마가 잠결에 오줌, 하면 벌떡 일어나 요강까지 갖다 바쳤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꺄아악, 소리 지르며 진저리를 친다. 어떻게 남편을 엄마로 생각할 수 있느냐고, 정말 애정결핍의 끝판왕에 의존증 말기라고 핀잔을 준다. 엄마는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 나는 좀 덜 떨어졌다니까. 그러니까 여태 니 아빠만 바라보고 살았지.”  

    

나의 엄마 윤은 사랑의 화신이다. 휴일이면 엄마는 어린 딸들은 본체만체하고 아빠 옆에 딱 붙어 누워 시간을 보냈다. 사업을 시작한 아빠가 늦으면 마중을 가고, 한눈팔까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함께 친목계 모임에 다녀오면 반드시 여자 문제로 다투었다. 사고의 회로가 온통 아빠를 좇아 작동하는 사람 같아 어린 마음에도 서운하고 못마땅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이 없으면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할 말이 없다고 굳게 믿었던 엄마는 기어코 늦은 나이에 아들까지 얻었다. 남편과 아들, 두 남자에게 열렬히 사랑을 쏟아붓던 엄마, 언제나 집안에 끄릿끄릿한 남자들이 왔다갔다하면 좋겠다던 엄마. 어쩌면 우리 세 자매는 딸로서는 채워줄 수 없는 엄마의 소망에 얼마간의 부채감을 안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딸보다 사위를 더 좋아하던 그녀를 보며 가끔 뿌듯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 줄곧 뒤로 밀쳐졌던 딸로서의 삶이 서러워 한동안은 많이 울었다. 왜 난 안되지, 언니는, 여동생은? 그러다가 “엄만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아?” 하고 따지기도 했다. 그리고 보란 듯 이혼까지 하고 아주 약간은 통쾌했다.    

  

지금도 그녀는 남자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틈만 나면 남편 흉을 보면서도 그가 자기와만 오붓하게 시간 보내주길 원한다. 오랫동안 그런 그녀가 내게는 수수께끼였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실마리를 찾은 건 어느 밤이었다. 무심코 가족 단톡방에 쌓인 대화를 훑어보던 중이었다. ‘해결사 우리 아빠’라는 메세지 아래 언니 집에 들른 부모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공구를 들고 욕실 수납장을 손보는 아빠 뒤에 엄마가 구경꾼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나는 익숙한 그 광경이 왠지 새삼스러워 골똘히 바라보다 깨달았다. 우리에겐 내내 당연했던 아버지의 존재가 엄마에겐 없었구나. 그래서 남편에게서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 모습이 보이면 저렇게 어색하게 떨어져 바라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엄마가 아니라 어리고 젊은 윤이, 한없이 풀어지는 마음을 잡아 맬 울타리가 없어 불안해했을 그녀가 머릿속을 어른거렸다.

‘에잇! 부모 자식의 관계란 정말 끈적하고 질척하고 안쓰럽다니까. 실컷 원망도 못 하게!’

엄마에게서 윤을 발견한 그 밤, 나는 괜히 분해졌다 짠해졌다하며 투덜대느라 잠을 설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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