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의 결혼을 몇 달 앞두고 가족들은 제각기 분주하게 결혼 준비를 했다. 엄마는 아들이 신혼집에 가지고 갈 짐과 남겨둘 짐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예비 며느리와 마사지를 받고, 한복과 헤어, 메이크업 예약을 했다. 아빠는 주례 대신 양가 아버님께 축사를 부탁한 아들 내외 덕에 한 달 내내 글쓰기에 매달렸다.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며 내게 어찌나 열심히 퇴고를 요청하는지 막판에는 “제발 그만요~”를 외칠 정도였다. 우리 자매들도 식장에서 입을 한복을 빌리고, 자녀들의 정장도 한 벌씩 맞춰 입히는 한편 아들 같은 동생에게 축의금을 얼마씩 해야 할지, 이혼한 전남편들이 오도록 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예식 후 집으로 모실 친지분들 대접을 어떻게 해야할지 같은 사항을 부지런히 상의했다. 결혼이 당사자들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나는 오래전 우리들의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낯섦을 느꼈다.
내가 첫 스타트를 끊은 후 우리 세 자매는 일이 년 차이로 모두 결혼을 했다. 준비 기간은 셋 다 한 달 내외. 짐을 들고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집 가까운 식장을 예약하고 혼수와 신혼여행은 홈쇼핑 카탈로그 몇 개로 끝냈다.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행사를 치른 후엔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워낙 가진 돈이 없어서였는지 엄마가 내준 숙제를 어떻게든 해치우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는지 큰 기대도 실망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남동생에 대해서도 결혼이라는 게 으레 그렇지 유난 떨게 뭐 있나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대학 진학 이후 내내 바깥 생활을 하던 남동생은 부모님과 합가하는 것으로 일 년여에 걸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아들 바라기인 엄마의 상실감을 줄여주기 위한 속 깊은 배려였다. 쾌활하고 살가운 예비 며느리가 집에 자주 찾아왔다. 그러다 좋은 날을 골라 상견례를 하고, 예식장을 알아보러 다니고, 신혼집을 구해 살림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웨딩 사진을 찍은 날은 가족 카톡방이 후끈 달아올랐다. 세상에 이렇게나 예쁜 커플이 다 있냐, 연예인 같다, 하는 끝도 없는 칭찬의 말부터 남자시키 화장이 너무 두껍다, 표정 너무 가식적이다, 하는 짓궂은 농담까지 끝없는 말풍선의 폭죽이 꼬리를 이으며 터졌기 때문이다. 이따금 가족이 모인 날에는 예비부부의 은근한 기싸움을 관전하며 부추기기도, 말리기도 하느라 서로 아웅대고 떠들었다. 어느새 우리는 아쉽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결혼식 준비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 당일, 결국 온 가족이 아침 일찍 예식장에 모였다. 물론 엄마의 바람대로 나와 여동생의 전남편까지 함께였다. 딸들과의 인연은 끝났지만 엄마에게는 여전히 둘째, 셋째 사위인 채로 두 사람은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동생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가족으로 지낸 이들이었다. 어쩌면 결혼식 참석은 그들에게 의무이자 권리일 수도 있었다. 한번 맺어진 관계란 쉽사리 끊어지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바꾸어 결국 제 몫의 수명을 채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듯하게 예복을 입은 남동생은 누나인 내가 봐도 멋졌고 신부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흰 저고리에 치마 색만 달리한 한복을 입은 우리 세 자매는 혼주석 바로 뒤에 앉아 식을 지켜봤다. 엄마는 몇 번의 눈물 포인트를 무사히 넘기며 화촉점화를 했다. 아빠도 오랫동안 준비한 축사를 막힘없이 잘 마쳤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사촌 언니는 그 축사를 듣는 내내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내 옆에 앉은 언니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축사 후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신부도 신랑 몰래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무척 떨었다.
‘어떤 이유로 만나 나와 사랑을 하고 어떤 이유로 내게 와 함께 있어 준 당신. 부디 행복한 날도 살다 지치는 날도 모두 그대의 곁에 내가 있어 줄 수 있길~’
신랑과 마주 서서 불안정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신부의 옆모습을 보다 나는 뜬금없이 목이 메고 말았다. 그 순간 정말 궁금했다. 저들은 어떤 이유로 저렇게 서로를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나는, 그는,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이토록 복잡하게 얽혀 이 자리에 함께 있게 되었나.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나보다 훨씬 어린 두 사람은 이미 생의 끝을 보고 온 사람들처럼 의젓했다. 내 피붙이의 결혼에조차 결혼이란 게 다 그런 거지 하는 냉소를 품었던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는 커다란 돌덩이처럼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꿀꺽 삼키며 온 힘을 다해 두 사람의 행복을 빌었다. 잘 살겠지만 더욱 잘 살길, 부디 행복한 날도 살다 지치는 날도 서로의 곁에 있어 줄 수 있길, 그리고 누나가 셋이라는 사실은 되도록 잊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