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란 Mar 20. 2024

뭐든 총량의 법칙





어릴 적 일이다. 아빠가 간식거리나 과일을 사 오면 나는 가장 먼저 나서서 머릿수대로 갯수를 나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한 언니와 여동생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다 못 먹을지라도 일단 내 몫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부득부득 나누기를 마치면 식욕이 왕성한 둘은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본다. 그러고도 부족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애저녁에 양이 찬 내 앞으로 모여든다.

“하나만~.”

“싫은데?”

“에이 어차피 배부르잖아.”

그 순간 내가 가진 귤 한 알, 사탕 두어 개는 강력한 권력으로 탈바꿈한다. 기다렸다는 듯 나는 자매들에게 온갖 미션을 던지며 그동안 쌓인 울분을 앙갚음한다. 틈만 나면 어른 노릇을 하는 언니에게 앞구르기를 시키고 나보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 동생에게는 큰절을 받는다. 그러고도 쉽게 음식을 내주지 않는다. “자세가 별론데, 다시 한번 해봐, 그냥 내가 먹을까?” 하며 마지막까지 깐족깐족 애간장을 태운다. 언니와 동생은 몸을 써서 음식을 얻고, 나는 먹을 것을 내주고 자존심을 되찾는다. 어찌 보면 치사하고 영악스러운 그 행위가 어린 내게는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는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졌다.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받는 특혜가 있다. 그런데 둘째는 그렇지 않다. 특혜는커녕 위아래로 양보하는 게 일상이다. 동생에게 하는 양보는 물론이고 심지어 여섯 살 생일에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언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을 새 옷을 양보한 적도 있다. 가족이 모여 추억담을 꺼낼 때면 엄마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다. 누워 있는 아빠, 엄마 머리맡에 세 딸이 달라붙어 흰머리를 뽑는다고 아웅다웅하다가 내가 물었단다. “언니는 첫째라서 예쁘고, 막내는 막내라서 귀엽고,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

세 자매 중 둘째란 그런 것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의식해야 하는. 엄마는 어린것이 세상 다 산 얼굴로 하던 그 말이 우습다고 아직도 웃음을 터트리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꽤 중요한 화두였을 테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밖에. 사람이 평생 받아야 할 애정에 총량이 있다면 나는 늘 가난한 편이었다.      


그러나 결핍을 채울 방도를 끊임없이 찾으며 인내하다 보니 삶에 생존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자녀가 많은 집은 늘 궁핍하다. 궁핍하면 직선으로 갈 수 없다. 나는 정품 대신 외형이나 기능이 비슷한 대체품을 찾는 일, 과외나 종합반 대신 단과반 수강 전쟁에 끼어드는 일, 원하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먼저 돈벌이를 찾아야 하는 일 같은 것을 능숙하게 해냈다. 이리저리 우회하는 길은 더디고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름하여 총량의 법칙. 시간이 없으면 돈으로, 돈이 없으면 체력으로, 체력이 없으면 끈기로. 물체가 질량을 가지듯 성취에도 총량이 있고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로 채울 수 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얼마의 돈으로 간단히 치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떻게든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패기로 여태 끈덕지게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끔 모르겠다. 든든한 밑천이었던 젊음과 체력과 의지는 슬슬 바닥을 보이는 듯하고 나는 노트북 화면에 개작할 소설을 띄워놓은 채 자주 초조해진다. 그 총량이라는 게 전 생애를 탈탈 털어 넣어도 다 채워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몸무게를 재듯 저울에 올라가면 누군가 내 꿈의 총량을 알려주면 좋겠다. 혹은 네비게이션처럼 목표지점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거나. 그런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힐 때면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엄마를 원망한다. 엄마는 왜 애를 셋이나 낳았어, 딸이라고 푸대접할 거면서, 아빠만 좋아해서 우리는 쳐다도 안 볼 거면서, 남들은 못 해서 안달인 반장 해오면 뭣하러 그런 걸 맡았느냐고 타박할 거면서, 재수도 안 시켜주고, 아들 키워야하니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독촉할 거면서, 딴 집에서 외동으로 자랐으면 내가 이렇게 안 살았지....어려서 안 했던 원망의 말을 이제야 생각난 듯 혼자서 마구마구 쏟아낸다. 그러다 불쑥 미안해지고 어쩌면 이것도 언젠가 미처 채우지 못한 총량의 법칙 때문인지 모른다고 변명을 하는 것이다.

이전 07화 여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