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란 Apr 17. 2024

등산의 목적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한 뒤 한동안 언니는 등산에 열중했다. 목적지는 치악산이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엥, 치악산?”하고 되물었다. 치악산이면 강원도에 있는 건데 너무 멀고 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이천에서 치악산까지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웃었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가 낮은 산책로를 한 바퀴 걷고 오는데 적당히 운동도 되고 무척 상쾌하다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혼자 가는 거야?”

언니는 당연하다는 듯 “응.”하고 대답했다.

“위험할 텐데.”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잡아가. 뒤에서 보면 산적이 따로 없다 야.”

그 말을 들으니 점퍼를 허리에 꽉 묶은 채 힘차게 팔을 흔들며 산에 오르는 언니가 떠올라 조금 안심이 되는 듯도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일행 없이 혼자 산을 오르는 것의 안전성도 장담할 수 없지만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혼자 외출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애들 데리고 가지 왜?”

“애들이랑도 오는데……혼자 오는 게 속 편해. 이렇게 차 몰고 나오지 않으면 내가 혼자 있을 시간이 없잖아.”

하지만 그 말이야말로 정말 이상했다. 언니는 혼자보다 누군가와 교감하고 함께 있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 주변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보살피고 마음 쏟는 사람. 그게 내가 아는 언니였고 바로 그 점이 언제나 나를 조금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자라는 동안 늘 그랬다. 동생이 엄마를 찾으며 울면 안아 달래며 자기도 울먹이고, 내가 동생과 싸우면 매를 들고 와 혼내는 척하며 세상이 무너진 듯 마음 아픈 표정을 지었다. 어버이날과 부모님 생일, 결혼기념일을 일일이 달력에 적어 놓고 매번 이벤트도 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언니가 시키는 대로 삐뚤빼뚤 카드를 쓰고 집에 있는 재료와 용돈 모아 산 빵으로 파티 준비를 하곤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는 친구들, 선생님과의 관계에도 마음을 썼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까, 나 때문에 상처받을까 혹은 나에게 실망할까. 온통 그런 고민들로 나를 붙잡고 밤새워 이야기했다. 나는 언니의 고민을 건성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피곤해지면 “어차피 사람들 남한테는 별로 관심 없어. 신경 쓰지 마.”하고 대화를 끊었다. 그렇게 누구든 안에 담아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혼자 있고 싶다니...


생각해 보니 몇 주 전 일요일에도 언니는 내게 전화를 했었다. 그냥 하릴없이 한 안부 전화처럼 꾸미긴 했지만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왔는데 갈 데가 없다고, 그러면서 아들 얘기, 남편 얘기를 마치 동네 아줌마들 수다 떨듯이 주책맞게 주고 받았더랬다. 그날 나는 집에 있었는데 갈 데가 없다는 언니 말을 듣고서도 선뜻 나한테 와, 하고 말해주지 못했다.      


문득 느낀 낯섦때문인지 잊고 있던 몇몇 장면이 주루룩 떠올랐다. 형부와 한참 관계가 좋지 않을 때 혼자 한강 다리를 터벅터벅 걸었다는 말, 두 아들과 남편이 잠들면 한밤중에 차를 몰고 나와 한 시간씩 목적지도 없이 다녔다는 말, 어느 날 아파트 창을 열고 까마득히 먼 아래를 한참 내려다봤다는 말. 언젠가 언니를 통해 들었던 말들인데 선명한 장면으로, 마치 내 기억처럼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힘들겠다 싶으면서 한편으로 워낙 마음씀이 유별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제 그렇게 힘든 시기를 다 지나왔는데 언니는 왜 혼자 산엘 오르는 걸까, 궁금해지려던 찰나 언니가 답을 했다.

“아무래도 나 상담받아야 할까 봐. 혼자 힘으로 극복이 안 되네.”


대학원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며 많이 나아졌지만 한계가 있다고 언니는 말했다. 왜 그렇게 슬프고 힘들었는지는 알게 되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이라 치유할 힘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불쑥불쑥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알 것 같았다. 불안정하고 자존감 낮은 엄마가 필터 없이 쏟아내던 감정을 폭우처럼 고스란히 맞고 자란 언니,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엄마의 표정을 살피던, 어느 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웃던 엄마 얼굴을 보고 엄마는 저렇게 웃는구나, 신기해했다던. 그 뒤로 엄마를 웃게 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는 언니 덕에 어쩌면 나는 이토록 무심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미안하고 고마웠고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화도 났는데 나의 미안함을 모두 다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왜 엄마는 아빠에, 아들에 집착하고 자기 마음 하나 돌보지 못해 딸들을 이 모양으로 크게 한 거냐고 혼자 열 내는 나를 언니가 다독였다.

“나는 가끔 그래. 내가 유별나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그냥 애답게 모르고 넘겨도 되는 감정을 너무 예민하게 흡수하는 바람에 힘들었다고. 꼭 누구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하겠어.”

“나는 몰랐네…….”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바람 쐬고 들어가면 좀 괜찮아져.”


언니가 혼자여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었다. 자기가 가진 건강하지 않은 감정을 다른 가족에게, 특히 어릴 적 자기만큼이나 예민한 큰아이에게 쏟아붓지 않기 위해 혼자 걷고, 차를 몰고 멀리 나가고, 산에 오르는 것이다. 힘차게 팔을 젓고 걸으며 발밑에서 부서지는 자갈 소리를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풀을 보고, 단단한 나무껍질을 만지면서 한숨 돌리기 위해.

“언니, 어차피 사람들 남한테는 관심 없어. 자기가 제일 힘들지. 그러니까 참지 말고 꼭 상담받아.”

언니가 예민하게 생겨 먹은 것처럼 무심하게 생겨 먹은 나는 예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꼭 상담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언니는 그래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러곤 “내가 맨날 혼자 와서 치악산 출렁주를 못 사 먹었는데 다음에 같이 와서 먹자. 집에 갈 때마다 눈에 밟혀 죽겠어 아주.”하고 히히 웃었다. 아뿔싸! 그렇다면 이제 내게도 등산의 목적이 생겨버린 건가.

이전 11화 마성의 막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