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벌써 맛있는 토마토를 두 번이나 먹었다. 틈틈이 인터넷 사이트를 탐색하다 부산 어느 농장에서 직송한다는 대저토마토를 주문했는데 크기는 작아도 껍질이 질기지 않고 시큼 들쩍지근한 게 마음에 들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토마토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제철 음식의 개념이 흐릿해진 지 오래지만 아무래도 제철의 햇빛과 바람을 맞고 자란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님에도 나는 토마토만큼은 기다리고 기다려 제철에 실컷 먹는 편이다.
토마토의 제철은 원래 초여름부터지만 평균 기온이 높은 남쪽 지방에서는 조금 더 일찍 무르익기 시작한다. 토마토를 좋아하는 내겐 무척 반가운 일이다. 지난주에 2.5kg짜리를 주문해 조심스럽게 맛본 후, 이번에는 5kg 한 상자를 주문했다. 스티로폼 상자를 여니 아이 주먹만 한 파랗고 싱싱한 토마토가 한가득이다. 윗부분에 잘 익은 몇 알을 골라 물에 씻고 나머지는 더 익도록 상자째 베란다에 내놓았다. 아마 하루 이틀이면 위에 놓인 것부터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그러면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듯 쏙쏙 골라 먹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꽃이 떨어진 자리에 콕 박힌 점 부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음~바로 이 맛이지!’
감탄하면서도 잘린 과육 안쪽의 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쪽 빨아먹는 걸 잊지 않는다.
언제부터 토마토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 입술이 헐도록 맛있게 먹던 기억은 생생하다. 부모님이 함께 일터에 나가시면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있는 동안 나는 밥 대신 토마토를 먹었다. 해가 쨍쨍한 날 초등학생 걸음으로 30여 분을 걸어 집에 오면 덥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급식도 전자레인지도 즉석식품도 없던 때여서 당장 먹을 수 있는 건 냉장고 가득 든 토마토뿐이었다. 토마토는 항상 두 손에 꽉 차고도 남을 만큼 컸다. 나는 냉장고 앞에 앉아 토마토 물을 뚝뚝 흘리며 하나를 해치우곤 또 하나를 빼서 먹고, 배가 빵빵하게 차다 못해 살살 아파올 때까지 그짓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면 과즙 때문에 입가가 발갛게 붓고 쓰라렸다. 그래도 옷자락으로 입을 닦아가며 먹고 또 먹었다. 편식이 심해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못 먹는 음식이 훨씬 많았던 내게 토마토는 드물게 맛있는 음식이었으므로 나중엔 입술이 아프지 않게 먹는 요령까지 터득했다.
먼저 토마토의 궁둥이-점이 찍혀 있는 부분-을 한 입 깨문다. 그러면 칸칸이 나뉜 속살의 윗부분이 골고루 조금씩 잘리는데 그 틈을 쪼옥 빨아 과즙을 해치운다. 그러고 나서 가장 만만한 한 칸을 앞니로 베어내고 안에 든 물컹한 속을 싹 긁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 칸, 또 다음 칸……. 맛도 맛이지만 그렇게 한 칸씩 헐어가며 먹는 재미가 참 좋았다. 비닐처럼 얇게 벗겨지는 껍질과 단단하면서도 퍼석한 과육, 푸딩같은 속을 먹고 나면 혀끝으로 느껴지는 매끈한 벽. 오전반, 오후반으로 엇갈린 언니와 여동생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나는 하나의 열매가 품고 있는 다양한 촉감과 맛의 매력을 열심히 탐구하곤 했다.
이제 여름이면 토마토, 그것도 예전에 맛있게 먹던 그 시큼달달한 맛의 토마토를 찾는 건 나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대체로 매년 성공적이었는데 작년만은 그러지 못해서 우울했다. 유독 비가 많이 와 과일들이 비싸고 맛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씁쓸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작년 3월, 독립하고 이 년 간 여섯 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지내던 나는 요행히 매입임대주택 청약에 당첨되어 열여섯 평 투룸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할 집의 월세를 줄이기 위해 보증금을 최대한 높이고 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을 새로 장만하며 또 몇백을 뭉텅이로 쓰고, 책상과 테이블, 의자와 자질구레한 살림을 사들이는데도 꽤 돈을 썼다. 이래저래 작은 액수로 나누어 쓰다 보니 얼마를 쓰는지도 모르고 덥석덥석 카드를 긁다가 카드 명세서를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보험처럼 지니고 있던 여윳돈도 바닥난 상황에서 통장에 구멍이 나면 큰일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도 토마토는 먹고 싶고……. 그래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며 저렴한 가격의 토마토를 찾았다. 청년들이 정직하게 농사지은 제품이라며 재배한 사람의 사진까지 떡하니 올려둔 광고가 보였다. 후기도 그다지 나쁘지 않아 횡재다 싶은 마음에 주문을 했다.
며칠 후 도착한 상자에는 새파랗고 돌처럼 딱딱한 토마토가 가득했다. 가장 만만한 놈을 골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단단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배송 과정을 고려해 덜 익은 걸 포장해 보냈다고 해도 씨를 감싸고 있는 속은 거의 없이 뻣뻣한 과육이 대부분이었다. 아쉽지만 먹기를 포기하고 베란다에서 익히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토마토가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하나를 골라 먹어 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색은 빨간데 속은 처음과 같이 딱딱하고 뻣뻣했다. 다시 보니 빨간색도 조금 이상했다. 보통은 익어가는 과정에 꼭지 부근의 초록이 조금 남아 있기도 한데 이건 그렇지 않았다. 흰색을 풀어 탁해진 붉은색 물감에 넣었다 뺀 듯 균일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때부터 좀 찜찜했다. 그래도 이왕 산 것이라 크기를 분류해 냉장고에 나눠 넣어두고 스파게티에 곁들이거나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뿌려 볶아 먹고, 샌드위치에 얇게 잘라 넣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조리해도 토마토는 토마토같지 않았다. 처음엔 참 맛없다, 싼 게 비지떡이야 하며 먹었는데 차츰 시간이 갈수록 의심이 들었다. 혹시 급하게 익히기위해 약품 처리를 한 건 아닐까 하는. 맛 없는 건 그렇다쳐도 표면의 붉은 색과 대조적으로 이제 막 맺은 열매처럼 딱딱한 속이 너무나 미심쩍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방법은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는 것이었다. 생으로도 맛있는걸 설탕에 절여서 먹고 먹다 결국 삼 일째,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토마토를 이렇게 맛없게 먹어야 한다고, 정말? 왜?’
싼 가격에 혹해 물건을 산 나나 형편없는 물건을 판 판매자에 대한 원망을 떠나 그냥 좋아하는 것을 맛없게 꾸역꾸역 먹고 있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고 그러자 인생에 대한 회의마저 밀려왔다. 나는 왜 늘 이따위로 구질구질한가, 왜 항성 최선이 아닌 차선을, 차선의 차선을 쉽게 선택하고, 쓸데없이 책임감은 강해서 수습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붓는가. 평생을 그렇게 살다 이제는 그만하자고 독립했는데도 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뭔가. 환경은 변했지만 너무나 여전한 모습인 나는 마치 겉만 빨간 설익은 토마토와 같았다.
싱크대에 놓아둔 토마토를 조각내고 냉장고 안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나머지까지 죄다 끄집어내 잘게 잘라 음식물 건조기에 쓸어 넣었다. 더 이상 맛없는 토마토와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금세 마음이 개운해졌다.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걸 미련을 떨고 있었던 게 한심스럽기도, 우습기도 했다. 그 길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건강하게 잘 익은 토마토를 제값에 사 왔다.
‘그래, 이제 토마토지!’
시큼 달큼 아삭한 맛을 입안에 느끼며 그제야 내 선택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좋은 선택을 많이 하기로, 적어도 좋아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만이라도 최선을 선택하기로 다짐도 했다.
그로부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꽤 많은 크고 작은 선택을 했다. 개중엔 잘한 선택도, 후회하는 선택도, 망설이다 놓친 선택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제철에 맛있는 토마토를 맛볼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는 점에서 나는 조금 나아진 것같다. 이런 걸 가족 톡방에 자랑하면 너무 오글거리겠지? 그래서 브런치에 슬그머니 풀어 놓는다. 이거 읽고 놀리지 마, 특히 막내 너! 키 작아도 내가 언니다.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