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오픈 준비를 도와준 뒤로 나는 동생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밀린 글공부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재바른 아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 나는 원래 좀 그렇다.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외면하지는 못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에 보일 일을 잘 안 만든다. 그동안 언니는 벌써 몇 번 동생에게 가서 일을 도와준 모양이었다. 잔정이 없는 은둔형 츤데레인 내가 가겠다고 하자 언니가 토요일 오전 차를 끌고 집 앞까지 왔다. 만나면 요란부터 떠는 우리는 손을 흔들고 엉덩이춤을 추며 인사를 시작해 온갖 허튼 말을 지껄여대며 다이소 앞에 차를 댔다.
“이렇게 생긴 거, 네모난 철망 있잖아.”
“아~네트망.”
“그르치. 그리고 거기에 걸 수 있는……”
“고리하고 바구니!”
마치 스피드 퀴즈처럼 언니가 설명하면 내가 맞추고, 알맞은 카테고리를 찾아가 물건을 고르기까지 손발이 착착 맞았다. 언니가 계산하는 동안 나는 옆집으로 뛰어가 점심으로 먹을 토스트를 포장해 왔다.
언니는 운전을 하고 나는 토스트를 까서 입에 넣어주고 그러면서 또다시 폭풍 수다. 헛소리가 반, 진심 어린 대화가 반, 웃다가 울다가 그사이의 애매한 눈물을 눈곱처럼 매달고 마포에 도착하니 늠름한 막내가 허리에 손을 척 얹고 우리를 반긴다. 이번엔 짧고 강렬하게 인사를 끝내고 언니의 지휘 아래 정리를 시작한다. 건조대에 쌓여있던 국자와 주방 도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를 찾아 걸렸다. 연비가 떨어지는 나는 금방 지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자리 잡았지만 언니는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주워 담고 의자에 걸린 옷가지 정리를 하느라 바쁘다.
“아오~기운들도 좋아. 좀 쉬어.”
그러자 막내가 재료 준비를 하며 뚝딱뚝딱 안주 몇 가지를 만들어 내온다. 바삭한 쥐포 튀김과 냄비 떡볶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너 그거 먹고 이따 붕어빵 구워라.”
“내가?”
“해본 적 있잖아. 여덟 종류밖에 안 돼.”
그렇지, 해본 적 있지. 이십몇 년 전에……. 그때도 사업가 기질이 있던 막내가 호기롭게 일을 추진하는 바람에 덩달아 일이 개월 붕어빵 장사를 했었다. 막내는 인터넷도 당근마켓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벼룩시장 광고지를 뒤져 기계와 재료상을 찾고 아빠 가게 앞에 떡하니 포장을 쳤다. 장사는 호황이었다. 막내가 개발한 잡채 붕어빵과 고구마 붕어빵 덕분이었다. 그때도 어설펐던 나는 옆에서 깔짝대며 다 구워진 붕어빵을 봉투에 담고, 돈을 받고 가까운 가게에 배달을 했다. 사실 붕어빵을 많이 구워보진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덟 가지나 되는걸?
“아유, 그래그래 우리 둘째가 또 차분하니 뭘 시키면 정확하게끄름 하지. 나는 뒤에서 설거지나 할란다.”
역시 츤데레인 나는 주섬주섬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붕어빵 종류와 레시피, 가격을 적는다.
“팥하고 슈크림, 고구마에는 하나씩만 들어가고 크림치즈 고구마에는 크림치즈를 넣고 그 위에 고구마, 다시 크림치즈?”
“야! 넌 뭘 그런 걸 정리해. 그냥 이름 보면 딱 생각나지 않아?”
“어……. 난 글자로 정리가 다 돼야 외울 수 있단 말이야.”
결국 나는 재료의 종류별, 개수별, 가격별 분류를 따져가며 가장 알아보기 쉬운 표를 만들어 눈앞에 붙이고 나서야 떨리는 마음으로 작업대에 섰다.
손님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좁은 입구가 바글바글해졌다. 한 사람이 한 종류씩 주문하면 좋으련만 기본 팥 하나 슈크림 둘, 혹은 슈크림 하나 팥 둘에 다양한 조합이 쏟아진다. 한 판에 붕어빵 열 마리씩인 기계 두 개를 앞에 두고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한 커플이 폭탄을 던진다.
“사장님, 저희 크림치즈 고구마 한 개랑요 콘치즈 한 개, 씨앗 호떡 한 개 더요.”
“아, 네네.”
그리고 잠시 후.
“사장님, 잠깐만요. 저희 콘치즈 말고 피자로 바꿔 주실 수 있나요?”
쿠쿠쿠쿵!!!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연이어 쏟아지는 주문, 계산, 또 주문. 실낱같은 정신줄 한 가닥을 간신히 부여잡고 기계를 돌리는 중에 홀 메뉴를 클리어한 막내가 끼어들어 상황 정리를 한다. 머...멋지다, 너란 녀석. 그렇게 한바탕 붕어빵러시가 끝난 후 막내는 내 앞머리며 얼굴에 묻은 반죽을 털어주며 혀를 끌끌 찼다.
장사는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언니와 나, 막내는 홀의 불을 낮추고 오붓한 술상 앞에 모여 앉았다. 뚝배기 가득 끓인 어묵탕과 얇고 바삭한 감자전 맛이 끝내줬다. 나는 감자전을 오물대며 “사람들이 왜 이렇게 군것질을 많이 하는 거야?”하고 칭얼댔다.
“그래야 내가 돈을 벌지. 말이라고 하냐.”
“아, 그렇지.”
언니가 웃음을 터트린다.
“우리 둘째 많이 힘들었구나. 사실 나도 사람들 대하는 게 젤 힘들어.”
“언니가?”
나와 막내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언니같은 영업 천재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아서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온 언니는 지금도 혼자서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 원장이다. 게다가 학부모 상담까지 잘해주기로 유명해서 아예 친구로 지내는 학부모가 있을 정도다. 그럼 언니는 그런 게 힘든데도 해 낸 건가? 하지만 언니의 설명을 들으니 그건 또 아니란다.
“난 사람들 고민 들어주고, 지지해 주고 그런 건 참 좋아.”
“아으~머리아푸다. 나는 그런 건 못해. 이렇게 장사하면서 사는 얘기 하고 그런 건 재밌는데.”
듣고 보니 똑같이 사람 대하는 일이라도 두 사람의 결이 다르다. 나는 둘 다 싫다. 싫다기보다 어렵고 자신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건 파고들기. 사람들 안 보이는 곳에서 그들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일이다. 한 배에서 나와도 아롱이다롱이라더니 똑같은 엄마, 아빠 밑에서 자란 세 자매가 이렇게나 다르다. 그러니 크는 내내 죽자사자 싸웠을 수밖에. 그게 싫어서 결혼하면 애는 하나만 낳아 스트레스 없이 키워야지, 하고 이를 갈았는데…….
“난 크면서 엄마 원망 많이 했는데, 이렇게 동생들 많이 낳아준 건 너무 고마워.”
언니가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나는 사람들한테 맨날 우리 언니들 자랑한다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해.”
막내가 고개를 쳐들며 맞장구친다. 좀 전까지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발그레한 볼과 머리에 동여맨 머릿수건이 막내답게 사랑스럽다.
“아우~난 지긋지긋해. 사람들 싫어!”
진저리 치는 시늉을 하며 불평하는 내게 동생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발사하고 언니는 “말만 그렇게하지 우리 둘째가 제일 착해. 착하니까 사람이 힘든 거야.” 하면서 어깨를 토닥인다.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나는 빠듯해 오는 목구멍을 누르기 위해 어묵 국물을 한 숟가락 뜬다.
“식었지? 다시 끓여줄게.”
팔팔 끓는 국물을 좋아하는 나를 잘 아는 동생이 얼른 일어난다. 나는 굳이 말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미안하지도 고맙지도 않게, 때로는 죽도록 미안하고 고맙게 서로의 빈틈을 채운다. 그게 다르다 못해 낯선 우리, 다르고 다르고 다른 세 자매가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