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춤판이 벌어졌다. 바닥에서 박나래 미러볼이 화려하게 돌아가고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된 황금 마이크를 든 아빠가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텔레비전이 노래방 화면 역할을 했다. 엄마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러나 새침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춤을 추었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어정쩡한 동작으로 손뼉 치는 남동생과 올케,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 소파에 대자로 누워 구경하는 셋째.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흥이 머리끝까지 오른 우리 언니가 있다. 종종 보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언니로 말하자면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맏며느리적인 단정하고 복된 자태와 학업 성적을 갖추어 동네 갈빗집 사장님부터 동장님, 학교 선생님까지 또래 아들이 있는 집안의 꾸준한 대시를 받은 이력이 있다. 물론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고 뜻밖의 인물과 결혼을 강행했지만 말이다. 결혼 후 한동안 부모님은 “그때 그 해운대 갈빗집에 시집을 보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지금쯤 아파트가 몇 채냐.” 하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아무튼 고단했던 생활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자태는 나이와 함께 더욱 농익어 조금만 차려입으면 귀티 나는 사모나 교수같다는 소리도 흔히 듣게 되었다. 그런 언니가, 밖에서는 교양이 철철 넘치는 원장님이, 언젠가부터 친정에만 오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돌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돌변이라기보다 봉인 해제에 가깝다. 평소에 넘치지 않게 잘 눌러놓았던 흥과 끼와 에너지를 가족 앞에서 유감없이 펼치는 언니는 가끔 무서울 정도다. 특히 밤을 새워도 바닥나지 않는 체력과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추는 광기 어린 댄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두 팔을 벌리고 엄지손가락은 위로 척, 스텝은 느리지만 절도 있고 화려하게 무브.
언니의 춤사위는 삼사십 년 전, 관광버스에서 춤과 노래가 허용되었던 시절의 아빠를 꼭 빼닮았다. 당시엔 동네 친목계 회원들과 매년 함께 피서를 갔는데,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아빠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사회자를 도맡아 마이크의 주인이 되었다. 아빠가 지목하는 사람이 통로에 나와 노래를 부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르르 함께 나와 춤을 췄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어린이는 지폐로 된 용돈을 받기도 했다. 나는 나서지도 못하면서 만약 내 차례가 되면 무슨 동요를 부를까 마음 졸이며 열심히 고민하곤 했다. 그때의 아빠는 뭔가 멋있으면서도 웃겼는데 사실 알아주는 음치, 박치였기 때문이다. 무슨 노래든 아빠가 부르면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었다. 무자비한 엇박자 리듬에 아슬아슬하게 맞아들어가는 그의 춤은 독보적이었다. 그 모습이 뒤늦게 언니에게서 재현될 줄이야. 아빠 못지않은 가창력을 소유한 언니는 요즘 들어 점점 더 아빠를 닮아가고 있다.
‘나그네 설움’에 소울을 진하게 녹여내 열창한 아빠가 마이크를 엄마에게 넘겼다. 왕년에 가수를 꿈꿨던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최신곡을 누른다.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제때 들어갔다 빠지는 노래에 형식을 무시한 두 파괴자가 난입한다. 갑작스레 애정 지수가 상승한 아빠는 엄마와 부르스를 시도하고 우리의 언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살풀이를 선보인다. 아……! 곱사춤의 대가 공옥진 여사가 보인다.
“둘째야 놀자~.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에~. 놀자~놀자아!”
“아니 나는 사진 찍어 줄게, 제발 살려줘.”
그러자 언니는 방향을 선회해 셋째에게 간다. 셋째가 바윗덩이같은 몸을 부스스 일으켜 몇 번 어깨를 들썩이다 욕을 하며 도로 누웠다. 그나마 젊은 남동생 부부도 지쳤는지 도망칠 기회를 엿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니는 즐겁다. 가만히 두면 밤샘은 끄떡없을 기세다. 역시 언니의 최대 강점은 강인한 체력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몸이 무겁고 아프다는 언니에게 필라테스 영상을 보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깔깔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둘째야, 나 못 살겠다 증말. 니가 보내준 영상 있잖아. 그거 따라 하는데 선생님이 스무 번씩 한 세트만 하라고 했거든, 그런데 글쎄 그걸 내가 한 번에 세 세트씩 한 거 있지.”
“엥? 그러면 다쳐.”
“그니까 말이야. 하라는 만큼만 하면 될걸 두 배, 세 배로 해서 빨리 낫고 싶었나 봐. 나도 모르게 막 하다가 아차, 하고 엄청 웃었어.”
“누가 말려.”
“나 진짜 건강한 사람인가 봐.”
“몰랐어?”
그렇게 되묻는 내게 언니가 진지하게 답했다.
“몰랐어. 나는 진짜 오랫동안 내가 둔하고 멍청하다고만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가 많아서 더 잘 견디고 참아내는 거였어.”
그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언니 같은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여겨 왔다니. 도대체 생의 어떤 지점에서 시작된 오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에너지가 많아서 잘 견디고 참아주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확신을 담아 긍정해 주었다.
“맞아. 그 덕에 목숨 건진 사람 최소 열 명.”
“어머, 역시 내 동생이 최고야! 칭찬 들으니까 또 한바탕 놀고 싶네. 유후!”
“응~취소.”
이제 마이크는 남동생에게 넘어갔다. 올케는 남편 팔에 귀엽게 매달려 있고, 부르스에 심취한 내 부모는 한껏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언니가 손에 든 휴지를 머리에 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