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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Mar 24. 2021

31. 소리에도 우울이 있다.

/ 공간을 메워야 공감을 이룰 수 있다.

흑인의 고통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서구 열강 시대에 극에 달했다(이전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아랍인들에 의한 노예무역에도 희생당했지만).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식민지가 확보되자 생산력 향상을 위해 노동력이 필요했던 그들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흑인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 유럽과 아메리카 각지로 팔려나갔다. 스페인과 영국 등 강대국들은 사탕수수, 목화, 담배, 커피, 고무 등의 생산을 위해 적어도 1,500만 명 이상의 흑인을 사고팔았다. 흑인을 판 사람 또한 흑인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흑인 사회의 권력자였고 유럽인에 기생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예선을  흑인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50일 동안에 20% 이상이 사망하였다. 억압된 신체와 비위생적 환경, 영양 결핍 등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설령 무사히 살아 뭍에 도착하더라도 끔찍한 노예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들 중 또 절반 가까이는 30살이 되기 전 죽거나 치명적 장애를 입게 되었다.

  

당시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뿐이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끼리끼리 모여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픈 연가를 불렀던 것이다. 그들의 노래는 소울이었다. 소울(soul)은 말 그대로 영혼을 의미한다. 아프리카 흑인의 영혼이었다. 비슷한 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R&B)는 사랑에 중점을 두었다면 소울은 흑인의 투쟁과 자긍심에 방점을 두었다. 극히 주관적이며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수 백 년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겐 '위로' 그 전부였던 음악이었다. 야만적 폭력에 핍박받은 그들은 소울과 같은 음악을 통해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흑인들에게도 아직 그러한 분노의 사회적 유전자는 남아있지 않나 생각한다.

미국 70년대 소울의 전설 알 그린(Al Green)의 대표곡 'Let's stay together'. 1972년 발표한 이 곡은 미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R&B 차트에서는 9주간 1위를 차지한 명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를 소울 보컬의 거장으로 추앙하고 있다. 흑인 특유의 거칠고 섹시한 그의 음색은 많은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종교적 분위기가 강했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명 가수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69년 윌리 미첼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나 후 급변하게 된다. 알 그린과 윌리 미첼의 결합은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빌보드 차트를 휩쓸며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해 자신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한 부인에게 충격을 받고 가스펠 가수로 전향, 금욕적인 생활에 임한다. 마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쓴 스위스인 ‘카를 힐터(1833~1909년)’의 모범적인 생활을 본받듯 반듯한 청교도적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소리에도 우울이 있다. 기쁨도 있으며 슬픔도 있고 함께함도 있으며 외로움도 있다. 참으려 하는 모든 것은 눈빛으로 몸짓으로 그리곤 목소리로 기록되고 있다. 몸은 모든 기억을 저장하며 표현하기도 한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게 감정의 선을 조율하기도 한다. 조율의 균형이 깨지면 불안의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미세한 모래와 같은 감정의 낱알들이 불안이라는 비에 젖어 엮이게 되며 곧 일상은 꼬이기 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의 진폭은 육체마저 잠식하고 말것이다.

눈빛 안에 우울은 비치며 몸짓에는 우울이 보이고 목소리엔 우울이 들려온다.


공감에는 공간이 있다. 공간을 메우면 공감을 이룰 수 있다. 교차하는 눈빛과 부대끼는 몸짓, 그리고 위로가 되는 소리에 틈은 좁혀질 것이며 우울의 깊이도 낮아질 것이다.

여여한 공기 사이로 소리 내어 숨을 보내야 한다. 나만의 표현을 발견해야만 한다. 분명히 어딘가 이 우울을 잠재울 것이 있을 것이다. 육체는 빼앗기더라도 ‘영혼’만은 내놓지 말아야 한다. 기다리고 인내하면 곧 평범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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