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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stan Oct 16. 2020

00. 직장 동물 12 간지 (Failureship)

이 팀에는 동물이 일한다.


그리고 팀이 망했다


1.

코로나 19 사태로 끝이 없는 무급휴직을 이어가고 있을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혁신은 없으나 안정적인 사업모델 덕분에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리던 이 회사는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코로나 한방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잘 나가는 회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 즈음에 콘텐츠 업계 탑 티어(Top tier) 2개 회사의 CEO가 각자 책을 냈고 나는 그 책을 앉은자리에서 읽어 해치웠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의 '디즈니 만이 하는 것',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규칙 없음'. 이 책을 읽고 나는 존재한다고 말로만 듣던 용(Dragon)이 회사에도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업계의 용(Dragon)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설화로만 존재하던 전설의 동물, 믿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유니콘 같은 존재. 더군다나 그 용이 내가 속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들의 철학과 조직문화, 판단력은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그러면 도대체 내가 속한 회사와 같이 일하는 동료, 나는 왜 그렇게 일하지 못하고 작금의 상황에서 허덕이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11마리의 동물인 것을


2. 

내가 속한 콘텐츠 마케팅팀은 11명이다. 결코 적지 않은 멤버의 이 팀은 브랜드 파트 3명, 제휴 파트 4명, 지점 마케팅 파트 3명, 팀장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적으로는 브랜드 파트가 기획하고 로컬 마케팅 파트가 실행하며 제휴 파트가 다른 기업과의 제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의 화학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각 파트는 각자의 모국어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 안타깝게 팀 내에 통역 담당은 없었다. 


내가 경험해본 플랫폼 사업자(OTT, 극장, 방송국)의 콘텐츠 마케팅팀은, 콘텐츠 제작 관련 부서(PD, 제작국, 편성국)에 비해 힘이 없다. 콘텐츠가 좋으면 마케팅이 뭘 했든 콘텐츠가 좋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고, 콘텐츠가 별로면 마케팅이 뭐라도 해서 성과를 내야 되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 일수다. 이에 대한 마케팅 팀에 대응도 늘 비슷했다. 기획하는 모든 이벤트는 사람을 모아야 하니 할인이나 경품을 제공하지만 항상 결과는 체리피커들의 배만 불러주게 된다. 이를 보완한다고 기획한 다음 이벤트는 체리피커 말고 멤버십 회원들에게 집중하는 이벤트를 하지만(예산절감), 이 돈도 아까운 다음 단계에서는 특별히 이벤트 하지 않아도 고객이 알아서 돈을 쓰도록 브랜드를 강화해야 한다며 남들 다 만드는 브랜드 콘텐츠를 유튜브나 페북 따위에 올리지만 고객이 보기에는 그냥 광고다. 이 패턴으로 한 사이클 정도 돌리면 약빨이 떨어질 것 같지만, 안심해도 좋다. 다행히도 그때 즈음되면(약 2년 정도 버틸 수 있음) 팀장이 바뀌거나 담당 임원이 바뀌어서 늘 했던 마케팅 활동은 새로운 이름으로 동일하게 반복된다.


앞으로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러한 의사결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써 내려가 볼 참이다. 해필 이 팀의 팀원이 11 명 이었고, 우연히 책으로 용(Dragon)을 만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어서 악의 없이 동물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가 보련다.  


3.

지금 쓰고 있는 글은 프롤로그(Prologue)다. 그리고 책으로 완성된다면 서점 한편에 소설이나 수필을 모아놓는 곳이 아닌 <스티브 잡스> <타이탄의 도구들> <트렌드 코리아 2022> <초격차> 등등의 경영, 자기계발, 조직관리, 경영학, 리더십 등의 서가에 꽂히길 희망한다.(그래. 그놈의 리더십) 수많은 리더십 서적이 다양한 성공을 제시하는 시범 교제로서 유의미 하지만 가끔은 타인의 오시범을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지 않나?


누구를 이끄는 리더십(Leadership)이 시들해지자 등장한 섬기는 리더십, 일명 서번트 리더십(Servent Leadership)이 등장하더니,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따르는 사람도 중요한 팔로어십(fellowship)도 등장한 이 시점에, 나는 과감히 제안한다. 훼일려십!


Failureship: The ability to fail.


실패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여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부디 당신은 속한 직장에서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4. 

이 모든 일은 한 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팀장이 책임져야 하고, 그러므로 팀장부터 이야기해보자. 그는 호랑이 었으며 우렁찬 포효를 가진 동물이었다. 하지만 뒤돌아 보니 그는 결국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고, 모두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새로운 이름으로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사냥이 무서운 성난 호랑이


그래서 이 팀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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