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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Aug 05. 2021

아빠와 크레파스

인생이라는 선물로 그리는 꿈

 노력하겠다는 말이 가진, 무책임함과 무서움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능력 없는 사람이 행하는 노력이, 때론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결과에 악영향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 사람의 노력을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노력하겠다는 말 앞에서는 하지 말 말조차 꺼낼 수 없다는 게 답답다.

 그래서 싫어했다. 내가 보기 노력해서 될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노력하겠다는 말도, 아무리 봐도 재능이 없어 보이는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 노력해 보려 하는 것도. 그 노력의 끝에 들을 말이 "거 봐. 내가 뭐랬어."이면 어떡하지. 노력 끝에 올 실패를 감수하는 것보다는 애당초 시도하지 않고 혼자만의 꿈으로 삭여 없애는 편이 더 깔끔하고 낫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게 현명하다고 여겼다.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무의미하게 허비해 쓰고 싶지 않았다. 못 하는 걸 열심히 하면서 그래도 재미있다고 웃는 누군가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너처럼,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실패할 내 모습이 두려워서.
그 실패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살아보니, 내가 잘하는 건 그래도 '열심히 하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보통 '잘 참고', 맡은 바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외엔 신께서 쏟아부어주신 재능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열심히라도 해봐야지.




 이 여행을 다 끝내고 다돌아가는 날 가져갈 내 스케치북이 최소한 너무 깨끗해서 부끄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스케치북을 왜 밟아놨냐며 뭐라 하더라도, 한 장이라도 더 내 발자국을 남겨 가서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다. 이게 나의 여행이었다고. 값비싼 크레파스는 못 샀지만, 그럼에도 나의 여행은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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