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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Feb 27. 2022

너의 전공은

영화 <너의 이름은>


글 쓰는 사회학도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지민을 설명하는 두 문장.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 이 두 문장이 나를 설명하기까지.





글이 좋았다. 울음이 터져 나올 때 울면서 글을 썼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썼다.



너는 왜 글을 쓰니

그런 질문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은 그렇게 내 일부가 되었고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되었다. 


그래도 조그마한 이유를 찾아보자면, 책을 읽으니 내 책을 만들고 싶어서 글을 썼던 것만 같다. 엄마와 아빠는 생일날마다 책을 사주었다. 칭찬받은 날은 책을 선물로 받는 날이었다. 그렇게 집에는 수천 권의 책이 쌓였고, 나보다 모든 것을 잘했던 언니에게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책이었다.


내가 언니보다 잘하는 거 있어. 언니보다 내가 더 책 많이 읽었어.

뭐 그랬던 때가 있었다.



힘이 들면 글을 썼다. 그렇게 나만의 단어와 문장들이 만들어졌다. 그 단어와 문장들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냥 멍하니 길을 걷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썼다. 악몽을 자주 꾸곤 한다. 악몽은 연달아서 찾아오는데 첫 번째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핸드폰을 열어 악몽을 남겨두었다. 악몽은 때때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그래서 그 악몽들을 썼다. 그렇게 눈과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이었고, 이어진 단어들은 문장이 된다. 문장을 다시 순서대로 끼워 맞추자 문장은 어느새 글이 되었다. 




 범죄는 숙명과도 같았다. 글과는 좀 다른 의미로 말이다. 글이 나에게 산소와도 같은 것이었다면, 범죄는 운명이었다. 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일까.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에는 범죄자 개인이 더 클까, 사회가 더 클까. 뭐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열여섯의 나에게 언니는 프로파일러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프로파일러는 나의 꿈이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범죄심리 동아리를 만들었다. 범죄와 관련된 여러 학문들을 탐구했고, 아이들과 신문에 나온 범죄들을 스크랩했다. 영화 속 사이코패스는 왜 저런 범죄를 저지를까 라는 추리를 해보기도 했다. 


열여덟,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 영어 듣기 시간. 여백이 있는 모든 곳에 글자들을 채웠다. 매 순간순간 써야 할 단어들과 문장들이 생각났고 그렇게 글을 썼다. 


열아홉, 3년 동안 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은 프로파일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원서를 접수하게 된다. 



스무 살. 돌고 돌아 다시 글에게 왔다고 생각했다. 모든 이들이 원하는 과에 오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대체로 국어국문학에 만족했으며 무엇보다 글을 사랑하는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아이들과 시와 소설,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시간들은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잊고 싶지 않을 기억이 되었다. 아이들과 나눴던 글에 대한 모든 기억들. 나는 절대로 이 기억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스무 살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영감이 떠올라서 글을 썼다. 양치를 하다가도 술을 먹다가도 써야 할 것들이 넘쳐났다. 최근 몇 년 간 쓴 것보다 스무 살 때 쓴 글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글을 썼다.




앞서 언급했지만, 범죄는 나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학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나는 사회학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회학에서 프로파일링을 하는 범죄 심리학이 아닌 범죄 사회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범죄 사회학은 그동안 나의 의문점, 현 사회가 범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것을 밝혀내야 하는 책임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습기도 하지.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사회학을 위해서 통계와 코딩을 시작했고, 그건 그다지 재밌진 않았지만 사회학의 일환이라는 생각을 하면 즐거워졌다.



물론 계속해서 글을 썼다. 글은 계속해서 여러 형태로 변화하며 내 곁에 머물렀다. 글은 소설이 되었고, 이따금씩 시가 되었으며 에세이가 되었다. 그리고 시나리오가 됐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사회학을 공부했다. 매주 모여 3시간이 넘게 토론을 했다. 하버마스의 이론과 벡의 이론을 조합해보며 현 시국에 맞는 해결방안이 있을까 한참을 이야기했다. 일요일 밤마다 하곤 했던 이 스터디는 5개월 여간 지속됐다. 3시간이 흘러도 우린 여전히 해야 할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이번해에 들어서 하나 다짐한 게 있는데 그 무엇도 영원하다고 단정 짓지 말자는 것이다. 글은 나에게 산소와도 같고 범죄는 나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고민에 빠지지 말자는 의미와도 같다.




10년 후 아니 5년 후 아니 당장 내년에 뭘 할지 모르니까 난



그냥 난.

계속 글을 쓰고 사회학을 공부하고자 한다.



적어도 그 두 가지를 하고 있을 때 내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안녕하세요, 글 쓰는 사회학도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교차로입니다 서행하세요>의 열여섯 번째 글입니다. 이 매거진은 같지만 다른 점이 많은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글을 씁니다.




지금까지 저희의 글과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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