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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Dec 11. 2023

걷는다는 암시

도시 속 인어들 3


너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하니. 엄마의 넋두리가 또 시작됐다. 사실 그녀는 정말로 남편이 불쌍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건 일종의 자기 주문이다.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보살펴줘야 하는 우리 남편. 너희의 아빠. 당신. 



너희 엄마가 저렇게 남편을 사랑하는지 몰랐다. 가만히 손톱을 들여다보던 이모의 말. 그러니깐요. 그러니깐.. 어느새 주문은 암시가 된다. 아빠는 정말로 불쌍한 인간이 되고야 만다. 마치 이모의 지겨워처럼. 이모는 아이고 지겨워란 말을 달고 산다. 그러다 보면 지겨워가 정말로 이모의 순간을 지배하고 만다. 아이고 지겨워 아이고 지겨워. 아이고 너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 난 아빠가 불쌍한 적이 없어. 이삼십 대 때 다 누리고 살았을 거야. 등산하는 사진 봤잖아 얼마나 행복해 보여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는 듣지 않는다.



엄마의 일주일은 온전히 당신의 남편을 향해 돌아간다. 반찬이 입에 맞지 않으면 입도 대지 않는 당신의 남편은 아주 살이 쫄딱 빠졌더랬다. 무조건 잘 먹어야 하는 암환자가 밥을 먹지 않으니 피골이 상접해졌다. 도대체 왜 밥을 안 먹는 거야. 병원 밥이 맛없어. 아빠의 투정에 엄마는 말을 잃었다. 재활병원에서 집 반찬을 먹는 것은 아빠가 유일하다. 



병원으로 반찬을 가져가는 수요일과 일요일을 위해 그녀는 이를 앙다물고 하루를 씹어댄다. 잘근잘근 잇자국이 날 때까지 하루를 씹어야 일어날 힘이 생긴다. 그 힘으로 야채와 과일을 손질한다. 이건 좀 너희 아빠가 먹겠니? 김치를 너무 좋아해. 저번에 김치를 한 통 가져다줬는데 며칠 내내 김치만 먹었지 뭐니. 말을 안 들어 죽겠어 정말. 귤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라고. 옆침대 사람이 귤을 자기 혼자 홀랑 먹어버렸대. 너희 아빤 견과류도 주고 간식도 나눠줬는데 말이지. 그러니깐 전화할 때마다 밀감. 밀감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래서 병원 근처 과일집에서 귤이랑 바나나를 사줬는데 며칠 만에 다 먹어버렸어. 그 차가운 걸 다 먹어버리니 설사를 하지. 왜 그렇게 말을 안듣나 몰라. 아참, 이 김치 좀 먹어봐. 너희 아빠가 이 김치 아니면 밥을 먹지 않잖아. 어쩌면 좋아. 청자가 중요치 않은 그녀의 넋두리. 주문. 암시. 



몇 주만에 본 아빠의 모습이 이상하다. 그녀는 귀신같이 남편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얼굴이 왜 그래. 아빠 얼굴이 왜 이렇게 노랗게 변한 거야. 그녀의 구릿빛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 밥 먹고 바로 자버리면 어떡해 그러니깐 체하지. 남편을 향한 그녀의 잔소리가 면회실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기가 되어가고 있는 아빠에겐 부탁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행위다. 어차피 까먹거나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간식으로 챙겨 온 떡을 다시 넣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먹으면 또 체할 것이 뻔하니까. 아빠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나는 화를 내고 만다. 왜 먹고 자는 거야? 아빠 체해서 죽고 싶어? 암 수술까지 했는데 체해서 죽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어이없는 죽음이겠냐고요. 체해서 죽고 싶어. 누렇게 뜬 그의 눈동자가 끔뻑거린다. 절레절레.



물리적 시간과 체감하는 시간은 비례하지 않는다. 면회가 벌써 끝이 난다. 아빠 걸어봐요. 아빠가 몸을 일으킨다. 다시 앉아버린다. 아니다. 반동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 손에는 엄마가 건넨 에코백을 들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다시 일어선다. 걷는다. 그가. 몸 만한 의료기구 없이 그가 걷기 시작한다. 약 한 달 전 집을 기어 다니던 그가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 와 걷는다! 


걷는다는 주문. 


걷는다는 자기 암시. 

그렇게 그가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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