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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Oct 15. 2023

Paradise of Toilet

도시 속 인어들 2 

고등학교 신춘문예에 냈던 소설. Paradise of Toilet. 엄마는 소설을 읽더니 단 한마디만을 했다. 너희 담임이 아버지 이야긴 줄 아는 거 아닐까. 그렇게 딱 한 마디만을 했다. 그 문장 속엔 많은 말들이 응축돼 있었다. 많은 말들이. 


화물차 기사의 하루. 장이 좋지 않던 그는 일을 제외하곤 대부분을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소설적 각색이 있긴 하지만 단초의 제공은 아빠였다. 틀림없이 그리했다. 그렇다. 아빠의 장이 좋지 않았던 것을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4년 뒤 아빠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아빠가 처음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난 아빠 곁에 있었다. 의사의 이야기에 아빠의 굽은 어깨가 더 쪼그라든다. 스물셋. 아무것도 아닌 나이에 부모의 진단을 듣는다는 것 참 쉽지 않은 행위다. 이것 참 데자뷔 같지? 그리고 2년 후 다시 나는 아빠의 파킨슨 진단을 들었다. 혼자서.


아빠의 앨범에 10대와 20대는 없다. 아빠의 이야기는 30대부터 시작한다. 나 역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는 그의 과거 보따리를 잘 풀어놓지 않았다.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나에게 부모였다. 가족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 않던 그는 유독 남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누구 딸이 여기를 갔대. 누구 아내가 지금 이걸 하더라. 항상 궁금했다. 궁금한 걸 참을 수 없는 나는 항상 되묻곤 했다. 도대체 남 이야기가 뭐가 중요한 건데요. 


그랬던 그가 암 진단을 듣고 나선 울음을 토해낸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가 운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한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운다. 난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가족력도 없는데 암에 걸렸다. 그냥 배가 좀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암에 걸렸다. 그것도 3기에. 그가 그렇게 울었다. 


그냥 좀 배가 예민하다라, 과연 정말 예민했을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그를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정말 몰랐던 걸까? 그가 병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물음에 물음은 이윽고 침묵을 부른다. 나의 인생이 기구하다는 연극에 몰두해,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실 알고 있었잖아. 그의 하루가 그를 죽이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처음부터 일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어디 있겠냐만은. 아빠와 화물차 운전은 유독 맞지 않았다. 아빠를 스쳐 지나간 여러 직업들 중에서도 단연코 최악의 상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돌아오는 그의 몸은 기름 냄새로 범벅이었다. 남들보다 손이 느렸던지라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차가운 아침을 먹고 직장으로 나선다. 이렇게나 빨리 집을 나섰음에도 일을 바로 시작할 순 없다. 그의 장이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 참 질긴 악연이었다. 12시에 퇴근해 저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저녁을 먹고 그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연하다. 어떻게 바로 잠에 들겠는가. 


자책하지 않기로 했지만, 참 언어라는 게 그렇다. 자책하지 말자- 하는 순간 자책에 빠지는 것이다. 자책이란 동사는 모이고 모이다 못해 죄책감이란 명사를 만든다. 그렇게 마음속에 죄책감 덩어리가 하나, 두 개, 세 개 쌓여만 간다. 


글은 예선부터 떨어졌다. 아빠에겐 소설을 보여줄 수 없었다. 왜 보여줄 수 없었는데? 부끄러웠겠지. 그의 하루를 관음했던 내가. 생존의 연속이었던 하루를 감히 글 몇 자로 적어냈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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