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100일의 휴가 - 3일 차
참 이상한 아이였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잘 웃는 한마디로 친구 많은 '인싸'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입을 꾹 닫고 동굴에 들어가 버리는. 그래서 한순간 모든 이들과 멀어져 버리는, 학창 시절의 나는 참 이상한 아이였다. 스스로 왕따를 자청했달까. 말은 잘했지만 속내는 결코 말하지 않았던 나는 줄곧 참아내던 (집에서만 느끼던) 불안과 우울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유년시절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시던 빵에서 올라오는 모락모락 김처럼 따뜻했으나, 한편 언제 집을 빠져나와 타인의 집에서 잦은 폭풍우가 또 멎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모를 불안이 늘 함께 했던 날들. "그래서 불행했나요?" 묻는다면 "글쎄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의 형용사로 단언할 수 없는 나의 청소년기를 나는. 마냥 따뜻하지도 마냥 춥지도 않았지만 한 가지, 불안은 곁을 떠나지 않았던 날들. 그래 그게 나의 청소년기였다.
폭언과 함께 감정의 널뛰기를 하며 내게 화풀이를 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일.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의 계단 오르는 발소리를 밤새 숨죽인 채 기다리는 일. 언젠가부터 매일 술을 마시던 부모를 찾아 밤마다 서울 곳곳을 헤매는 일은 타고난 기질이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의 예민함을 차츰 증폭시켰다. 잘못한 게 전혀 없는데도 끊임없이 부모의 눈치를 보고 그리 하는 게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모르고 부모의 화풀이를 그저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아이는 우울감으로 병들어 갔다. 병이 드는 줄도 모른 채.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하지만 본능은 살아있어서일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걸까. 그 시절에도 하나뿐인 동아줄은 있었다. 음악.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성장 환경에서 보다 증폭된, 타고난 나의 기질인 예민함과 섬세함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에 따라 나를 날게 할 수도 주저앉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조차도 최근에야 든 것. 예민하고 섬세한 난 모든 상황과 타인의 변화, 상태 등을 놀랍도록 찰나에 감지한다. 감지만 하면 좋으련만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고 휘둘려왔다. 특히 타인의 감정에. 그뿐인가. 끊임없이 의식했다. 타인을. 눈치 보기. 겉으론 세상 대범하고 거리낄 것 없이 행동하지만 실은 스스로를 이유도 없이 죄인으로 만들며 무너지고 있었다. 예민함에서 기인하기도 하는 우울은 그래 나의 취약성일 것이다. 해서 나는 나의 예민함이 나의 섬세함이, 그런 나의 타고난 기질들이 내도록 버거웠다. 좀 덜 예민하면 좋으련만. 좀 더 무디면 좋으련만. 좀 더 대충이면 좋으련만. 그래 늘 그랬다. 40여 년을 그리 살았으니 이제는 바꿀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친 내 마음을 돌보는 100일의 휴가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면서 나는 타고난 나의 기질 또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기로 했다. 그러자 보였다. 마침내 보였다. 예민함과 섬세함. 나의 타고난 그 기질들 덕분에 그동안 내가 해낸 일들이. 또한 그 덕분에 글쟁이로 살아온 어제와 살아가는 오늘이. 또한 깨닫는다. 나의 취약성. 쉽사리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우울감이 때때로 나를 덮치는 것이 이상한 일도 나쁜 일도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러운 나의 취약점이며 역시 수용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역시 안돼. 이 가치 없고 쓸모없는 인간아"라며 나를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배경을 차분히 직시하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면 그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분명한, 정말 분명한 사실. 우울감은 지금껏 그랬듯 영원히 머물지 않고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 나는 그걸 믿고 그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