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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일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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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27. 2022

중간이 있는 삶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100일의 휴가 - 13일 차

자라면서 알았다. '평범'과 '보통' 깊숙이 숨어 있는 '이상적'을. 평범한 보통의 삶? 실은 이상적인 삶이다. 노력해야 누릴 수 있는. 지친 마음을 돌보며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100일의 휴가를 보내는 요즘 든 생각. '중간이 있는 삶'을 만들어야겠다. 나에겐 '중간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치킨과 라면을 먹은 뒤 배달앱을 열어 주문을 고민하던 떡볶이까지는 먹지 않는 삶. 좀 먹었다고 '망했다'며 폭식의 길로 향하지 않고 나가서 진짜 길을 걷는 삶. 폭발하는 식욕을 온전히 나를 위해(어차피 먹으면 후회할 거니까) 살살 달랜 뒤 도서관에 가 글을 쓰는 삶.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비록 과자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먹었지만 배달앱은 열지 않는 삶. 그런 삶. 그런 '중간이 있는 삶'. 아 쓰고 보니 무슨 노래 가사 같은 걸. 그보다 '중간'이 아닌 '먹보의 삶' 같기도 하고. 무튼 이런 '중간이 있는 삶'을 만들고 있다. 나는 지금.


먹거나 굶거나.

평소엔 가급적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려 한다. 어릴 때부터 고기는 크게 즐기지 않는 데다 채소, 과일, 나물, 고구마, 청국장, 현미 등을 좋아하는 건강한 입맛이기도 하다. 이른바 할매 입맛.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떡볶이부터 당긴다. 건강한 입맛이 아닌 겐가. 무튼 매운 떡볶이를 시작으로 기름지고 달고 바삭하고 차가운 것. 이를테면 평소엔 피하는 튀김, 도넛, 과자, 아이스크림, 냉면 등을 순차적으로 먹어댄다. 그래 먹어댄다는 표현이 딱 맞다. 한참 먹고 나면 자괴감이 밀려와 단식을 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먹거나 굶거나 극과 극을 오가는 패턴을 오래 이어왔다는 얘기다.


본래 포기가 가장 쉽다. "먹었어. 망했어. 내가 그렇지 뭐. 계속 먹을래"는 나를 포기하는 것. 하지만 "먹었어. 망했어. 괜찮아. 여기서 멈추면 돼"는 중간을 만들어가는 것. '계속 먹음으로써' 자주 나를 포기해왔던 나는 이제 '멈추고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중간이 있는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몰랑. 그냥 누워있을래" 하다가도 순간 벌떡 일어나 움직이고 있으니까.


식습관뿐일까. 모 아니면 도. 극과 극. 한순간의 멈춤 아니면 전력질주. 참 드라마틱하게 살았다. 무리하며 살아온 생이란 말이다. 평범, 보통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단 말이다. 멀리, 오래 가려면 방법은 하나. 천천히 가야 한다. 전력질주는 100m 달리기에서나 가능한 것. 인생은 마라톤이다. 마라톤에서 전력질주는 아이고 의미 없다. 중간이 있는 삶으로, 평범한 보통의 삶으로 그래 나는 간다. 뚜벅뚜벅.


100일 휴가 13일차 - 2022.5.26 와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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