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 얻게 되는 것들.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 100일의 휴가 14일 차, 하늘공원이 노을공원, 평화의공원, 난지천공원,난지한강공원으로 이뤄진 월드컵공원의 일부였음을 알게 됐다. 애초의 목적지는 하늘공원. 예의 지하철이 아닌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발견은 또 한 번 이뤄졌다. 그래. 지금은 100일 휴가 중. 나는 익숙한 길 대신 새로운 길, 가보지 않은 길로 기꺼이 나를 옮긴다.
승용차와 버스들. 주차장 끝에 무엇이 나올까. 앞을 향해 걸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윤슬이 아름다운 연못과 숲. 볕에 지친 색색의 장미들. 평화의공원이었다. 연못에는 제법 큰 잉어들이 살고 있었다. 안녕? 나도 물고기야. 꽤나 다정한 인사였음을 그들은 알까. 천천히 걸으며 평화의공원 구석구석 음미했다. 길은 모두 이어져 있다. 걷다 보니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익숙한 계단이 보인다. 성큼성큼 계단 향해 걸어가는데 순간 눈에 들어오는 왼편. 찾았던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정확한 이름은 희망의 숲. 주저 없이 방향 틀었다. 감사함 안고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한두 해 자랐을까. 인간으로 치면 청년기일 것이다. 노년기는 없을까. 갈래갈래 드러난 뿌리 인간 발에 밟힌 채 살고 또 사는 저이는 몇 번의 여름을 났을까. 고개 절로 숙여진다. 나무는 스승. 나무는 위로.
월드컵공원 평화의공원
끝난 줄 알았던 길.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물음표 안고 그러나 '가보기로' 한 길. 다시 눈앞에 메타세쿼이아 길 펼쳐진다. 전보다 훨씬 더 긴. 무슨 행운일까. 너무 좋아 헤실거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이토록 아름다운 길 있음이 기적이고 그 안에서 걸을 수 있음이 축복이다. 충분히 심호흡하며 걷다 숲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일기장 폈다.
비워내야 채울 수도 있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우기다. 비우고 흘려보내고 놓아주는 일. 쥐고 있던 나의 상처, 나의 아픔, 나의 집착, 나의 괴로움, 나의 욕심, 나의 이기, 나의 시기, 나의 질투, 나의 우울 그 모두를 내려놓고 흘려보낸다. 나 자신을 '무'와 '공'의 상태로 두어야 한다. 내 삶을 원하는 것으로 채우려면 비우고 가벼워지는 게 먼저다. 꽉 차 있는 상태에선 무엇도 더 들일 수 없다. 더 흘려보낸다. 기꺼이 흘려버린다. 조금도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