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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21. 2021

밥과 밥벌이 사이의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

밥ㅣ매일먹고 매일 번다. 그래서 더더욱 절실한 한 그릇의 온기

보통 하루 세 번 먹는다. 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한다. 물론 거를 때도 있다. 거르면 서럽기도 하다. 혼자 먹기도 하고 함께 먹기도 한다. 좋은 이들과 먹으면 그 자체로 즐거움이지만, 불편한 이들과 먹으면 얹히기 십상이라 소화제를 부르기도 한다. "밥은 먹었냐"는 물음도 "밥 먹자"는 인사도 '밥의 민족'에겐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그 어드메에 애정이 없다고도 할 수 없겠다.


매일 먹고 매일 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벌고 벌기 위해 먹는다. 우리는 밥을.



내 자리가 아닌 낯선 곳에서 내가 있어야 할 내 자리에 대해 아프게 고민하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비염과 몸살감기마저 겹쳐 입맛도 기력도 모두 달아났을 때... 그러나 온몸을 휘감는 한기 탓에 온기가 절실했던 그때, 배달 앱을 열고 미역국 한 그릇을 주문했다. 30분쯤 지나서였을까. 미역국이 도착하고 포장을 풀어 윤기 흐르던 밥과 국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를 나는 잊지 못한다. 얼었던 몸과 마음이 순간 거짓말처럼 확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먹어온 너무도 익숙한 엄마의 된장찌개 한 입에 쌓였던 설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경험이랄까. 그때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한 그릇의 밥과 미역국을 깨끗이 비운 뒤 배달 앱에 장문의 감사 리뷰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랬다. 내게 감긴 눈을 뜨게 하고 막힌 코를 뚫리게 하고 얕은 숨 한 번 깊게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리하여 다시 살게 하는 것은 집밥이든 식당밥이든 늘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따끈한 밥 한 그릇이었다.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아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기어이 눈물 훔치고 일어나 밥을 벌러 가야 하는 우리는,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딱 한 번뿐인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쉼 없이 밥을 벌어야 하는 우리는, 그래서 더더욱 잘 지은 밥 한 그릇의 온기가 그립다. 늘, 절실하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은 내가 내게 주는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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